과거 우리나라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나라’ 라는 수식어가 붙었었다. 북위 33도에서 43도 사이에 위치하며, 대륙성과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뉜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한해 한해 시간이 지날수록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은 동남아를 연상시키는 스콜 현상이 나타나는 등 기후의 변화가 느껴진다. 한여름 바깥 활동이 점점 힘들다. 태양 빛이 강해도 습도만 낮으면 좀 견딜만한데 높은 습도로 숨이 턱턱 막힌다. 여름철 보양식이 절로 생각나는 날씨의 연속이다.
여름철이 되면 한두 번은 꼭 해 먹는 삼계탕을 올해는 벌써 세 번을 해 먹었다. 처음에는 정말 작은 영계(8호) 두 마리를 사용했는데, 네 식구가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크기가 조금 큰 닭(11호)을 사용했는데, 요리를 하다 보니 삼계탕과 닭백숙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삼계탕: 주재료로 어린 닭(삼계)을 사용하며, 닭 속에 찹쌀, 인삼, 대추, 마늘 등을 넣어 조리한다. 이는 영양을 보충하고 건강에 좋은 성분을 더하기 위함이다.
닭백숙: 주로 성숙한 닭을 사용하며, 특별한 속 재료 없이 닭과 물만으로 조리한다. 보통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찾아본 자료를 토대로 보니 내가 만드는 삼계탕은 삼계탕과 닭백숙의 중간쯤 되는 요리 같았다. 하지만 요리의 명칭은 중요치 않다. 맛만 좋다면…….
삼계탕에 들어가는 속 재료와 닭을 구매했다. 요즘은 속 재료가 소포장 티백으로 나와 너무나 간편하다. 티백 속에는 황기, 오가피나무, 당귀, 엄나무, 뽕나무, 대추 등 몸에 좋은 한방 재료들이 담겨 있다.
닭은 손질해서 깨끗이 씻어준다. 손질이라고 하면 날개의 뾰족 날카로운 부분을 가위로 잘라주고 꽁지의 기름 덩어리도 제거해 준다. 판매되는 닭은 비교적 깔끔하게 손질되어 판매되지만, 날개와 꽁지의 기름은 손질이 안 된 경우가 많다. 닭의 살짝 갈라진 배 부분을 보면 기름 덩어리가 붙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가위로 손질해 주면 좋다. 손질이 끝났으면 배 속의 내장 잔여물을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손질이 끝난 닭 배속에 씻어서 살짝 불려둔 찹쌀을 넣어준다. 찹쌀이 흐르지 않게 닭의 두 다리를 잘 포개서 닭이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압력솥이나 일반 솥에 속 재료 티백 하나를 넣어 가스레인지에 올려 불만 켜주면 끝이다. 압력솥은 요리 시간을 단축해 주고 고기에서 뼈가 쏙 발라지게 해주어 질긴 고기 요리를 할 때 아주 좋은 주방 아이템이다. 기름진 것이 싫으면 앞의 단계에서 하나의 단계를 추가해 주면 좋다. 끓는 물에 손질된 닭을 한번 데치고 닭의 겉껍질을 제거해서 조리에 들어가면 조금은 담백한 삼계탕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난 닭 껍데기를 먹지 않는다. 아이들이 생기기 전에 한번 데쳐 껍데기를 다 벗겨 버렸는데 아이들은 맛있다고 하니 기호에 맞춰줘야지.
“서현아, 닭 껍데기가 맛있어?”
“응, 맛있어. 쫀득하고 쫄깃하고…….”
“그래 많이 먹어라.”
이 간단한 과정에도 한 번씩 ‘아이코, 이런이런…….’소리가 나오게 하는 일이 꼭 발생한다. 올해 첫 삼계탕을 만들 때 욕심을 부렸다. 닭이 작은 대신 죽을 많이 해야겠다는 욕심에 닭의 배 속에 찹쌀을 너무 많이 꾹꾹 채우고 일반 솥에서 좀 오래 조리했다. 시간을 넉넉히 두었는데도 닭은 다 익었는데 찹쌀은 하나도 익지 않았다. 닭의 배 속에 있던 찹쌀은 생쌀이고 솥 바닥으로 흘렀던 찹쌀은 눌어붙어 누룽지가 되어 있었다. 욕심은 꼭 일을 두 번 하게 만든다. 결국 일반 솥에 있던 닭을 압력솥으로 옮기고 다시 조리에 들어갔다. 조리가 되는 동안 일반 솥 바닥에 눌어붙어 누룽지가 된 찹쌀죽을 박박 긁었다. 압력솥에 다시 들어간 닭과 박박 긁은 누룽지의 조합으로 의도치 않게 누룽지 삼계탕이 되었다. 닭을 먼저 먹은 후 찹쌀죽에는 다진 마늘을 넣어 한 번 더 끓여주었다. 특별히 맛에 신경 안 쓰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보양식이다.
두 번째 삼계탕은 조금 큰 11호의 닭으로 하며 손질한 닭은 압력솥으로, 살짝 불린 찹쌀은 냄비에 따로 밥을 지었다. 11호 두 마리로 한 삼계탕은 네 식구가 먹기에 충분했다. 압력솥으로 조리해 야들야들 살이 쏙 발라지는 닭을 먹고 국물에는 냄비에 해둔 찹쌀밥과 다진 마늘을 넣어 후루룩 끓여 간단하게 죽을 만들어 먹었다. 처음과 같이 익지 않은 생쌀을 피하고 넉넉한 찹쌀죽을 하려는 잔머리였다. 넉넉하게 만든 닭죽이 많이 남았다. 한 끼를 충분히 때울 수 있는 양이다. 그다음 날도 아이들에게 닭죽을 주었다. 한 번의 노력으로 최소 두 끼는 해결이 되니 참 좋은 메뉴다.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지만, 닭을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코는 닭 비린내로 잠식당했다. 삼계탕 본연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요리하는 사람은 먹기도 전에 냄새로 이미 배가 부르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럼에도 여름철 보양식으로 삼계탕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여름에도 꾸준히 만들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