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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오이지의 계절이 왔다

by Balbi


오이지의 계절이 왔다. 제철음식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재래시장에 가면 '지금은 이걸 만들어야 하는 때야' 하고 친절히 알려준다.

오랜만에 간 시장엔 반접씩 포장된 오이가 쌓여있었다. 재료를 구매할 때는 신선하고 저렴하면 최상의 선택이지만 오이지처럼 오래두고 먹을 식재료는 조금 비싸도 재료의 상태를 최우선으로 둔다.

1만3천원을 주고 사온 오이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올려 물기를 빼준다. 네이버 검색을 해서 레시피를 정독. 전통방식과 물 없이 하는 두 가지 방식이 나온다. 많은 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건 모험이다! 그동안 해왔던 전통방식으로 만들기를 결정하고 스탠들통을 준비했다.


스탠들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끓인다. 물이 따뜻해지면 소금을 넣어 소금물의 염도를 맞춘다. 이때 확인 방법은 계란을 넣어서 500원 동전크기 정도만 물위로 달걀이 뜨면 적당한 염도라고 한다. 소금을 많이 넣었다 생각했는데 계란은 들통 바닥에 붙어 올라올 생각을 안한다. 소금을 넣고 또 넣고 과하다 싶을 만큼 넣으니 계란이 떠올라 500원 동전 크기만큼 물 밖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물이 팔팔 끓어 오이에 소금물을 부어야 하는데 플라스틱 김치통이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반대로 소금물이 있는 들통으로 오이를 넣었다. 꽤 많이 들어갈 거라 생각했던 들통에 오이가 반밖에 안 들어간다. 나머지 반은 계획을 수정해 물 없이 만드는 오이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역시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획도 수정하고 발 빠르게 처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물 없이 만드는 오이지는 소금과 설탕을 1대1 비율로 준비하고 식초 한 컵, 소주 한 컵을 준비하면 된다. 더운 여름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되니 너무 간편한 방법이다.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오이를 김치통에 한줄 쫙 깔고 소금과 설탕을 1대1 비율로 섞은걸 듬뿍 뿌려준다. 오이를 한 층씩 쌓아주며 이 과정을 반복한다. 준비된 모든 오이를 통에 넣어 완료 되면 그 위에 식초와 소주를 뿌려준다. 물 없이 오이지가 완성 될지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물 없이 만드는 오이지는 시간이 지나면 물이 생기고 오이의 색이 달라진다니 지켜봐야 한다.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통을 열어보니 자작자작하게 물이 생겼고 아래쪽 오이는 초록색에서 누런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위쪽과 아래쪽 오이의 위치를 바꿔 또 하루를 보내며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3~4일이 지나니 오이가 잠길 만큼의 물이 생겼으며 오이의 색은 모두 누렇게 변했다.


들통에 있던 오이도 3~4일이 지나니 누렇게 변해 오이지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전통방식의 오이지는 오이를 건져낸 후 소금물을 한 번 더 끓여 식힌 후 오이에 부어준다.


오이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이가 물위로 뜨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돌이 있다면 돌로 누르면 좋지만 돌도 구하기 힘든 요즘이다. 그럴 땐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 누름돌 대신 사용하면 된다. 오이가 소금물 위로 뜨는 순간 오이지는 폭망이다. 오이가 물러서 먹을 수가 없다. 물러서 버렸던 경험이 있어 오이가 뜨지 않는 데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여름 내내 먹을 오이지가 완성되었다.

50개를 언제 다 먹느냐 싶지만 지인들과 나누고 반찬으로 만들어 먹으면 오이지만큼 헤픈 게 또 없다. 오이지를 동글동글 얇게 썰어 물에 10~20분 정도 담가 짠맛을 빼준 후 물기를 꽉 짜준다. 고춧가루, 설탕, 다진 마늘 등 몇 가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해주면 오이지무침이 완성된다. 이마저도 귀찮으면 동글동글 얇게 썬 오이지에 생수를 붓고 얼음을 동동 띄우고 쪽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간단한 반찬 하나가 완성된다. 더운 여름 찬밥에 물을 말아 요 오이지 반찬과 먹으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더위로 입맛이 똑떨어진 여름엔 오이의 아작아작한 식감과 특유의 상큼함이 입맛이 돌게 만든다.


오이지 반찬을 아이들도 맛있게 먹으면 좋으련만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반찬은 아니다. 오이지가 아이들 반찬으로 쓰이려면 어떻게 응용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더운 여름엔 불사용을 최소로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걸 보니 올 여름도 오이지와 콩국수가 우리 집의 주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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