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들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명절하면 다른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에겐 명절=음식(주방) 노동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의 이미지가 어쩌다 이렇게 고정되었을까? 참 씁쓸하지만 일반적인 대다수의 주부들에게는 이렇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 음식은 하기 싫은 음식, 불필요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들도 많은데 말이다.
명절을 앞두고 긴 연휴 기간을 위해 장을 보는데 육전을 해먹자고 제안하는 남편. 코로나 이후 시댁과 친정 모두 차례(제사)를 간소화 하거나 없앴다. 동그랑땡, 동태전 담당이었던 시댁 차례(제사)엔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덜었고 친정 차례(제사)엔 마음의 짐을 덜었다. 상황이 이리 달라지고 보니 남편은 명절이 되면 명절에 먹던 음식을 못 먹는 것이 아쉬운 것인지 가끔 이런 요청을 한다. 차례를 위한 것이었음 너무 하기 싫었을 테지만 가족들이 먹기 위한 것이니 기분 좋게 하기로…….
명절이 지나고 연휴에 육전을 만들어 아이들에겐 한 끼로, 우리에겐 술안주를 하기로 하며 재료를 준비했다. 전은 뭐니 뭐니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부쳐 먹는 전이 최고다. 기름이 자글자글한 프라이팬에서 바로 꺼낸 전은 두 번, 세 번 데워 먹는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고의 맛을 내는 육전을 안주로 먹기 위해 식탁위에 인덕션과 프라이팬 올렸다. 정육점에서 육전용으로 얇게 썰어온 소고기에 밀가루와 계란 물을 입혀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렸다. 기름이 자글자글한 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육전의 냄새는 어느새 집안 전체에 퍼졌다.
모든 전이 그렇지만 2인 1조로해야 좀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밀가루와 계란 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올려주는 1인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맛있게 부치는 1인. 둘의 합이 좋으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만 합이 안 맞으면 속이 터진다. 특히나 육전은 고기가 얇아 밀가루와 계란 물을 입히는 1인과 프라이팬 담당 1인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역할 분담을 해 육전을 부치다 보니 편히 우아하게 자리 잡고 앉아 술 한 잔하며 술안주로 육전을 입에 넣는 것은 힘들었다. 양손에 밀가루와 계란 물을 묻힌 나의 손은 술잔과 안주를 잡기 힘들었고 남편은 열심히 육전을 부쳐내며 아이들 먹을걸 챙겨주느라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역시…….육전은 옆에서 누가 부쳐주면 야금야금 받아먹으며 술 한 잔 하는 게 최고로 맛있는 거였어. 이렇게 양손에 다 묻히고, 바쁘게 부쳐내느라 제대로 안주삼아 먹을 수가 없네.”
몇 년 전 언니네 놀러갔다 옆에서 부쳐주는 육전을 낼름낼름 술안주로 받아먹었던 기억에 남편도 쉽게 생각하고 제안했지만 한번 해보고는 다시는 안한단다. 역시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결론을 체감하는 것인가?
그렇게 아이들의 한 끼와 우리의 술안주는 ‘그래도……. 수고스러웠지만 맛있었다.’로 마무리되었다.
평소엔 콜라나 오렌지주스를 마시지만 명절엔 식혜와 수정과를 자동반사적으로 찾게 되고 마시기 되는 경험을 모두들 한번쯤은 해봤을 테다. 이번 명절에도 엄마는 식혜를 해두셨다. 마트에서 판매되는 시판 식혜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이 있는 엄마 식혜다. 홀짝홀짝 몇 잔을 마시고 오랜만에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레시피는 엿기름을 면포에 넣고 치댄 후 앙금을 거르지 않고 함께 사용하기였다. 보통 일반 레시피는 엿기름을 면포에 넣고 치댄 후 앙금을 가라 앉혀 위에 맑은 물만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깊은 맛이 덜 하단다.
깊은 맛의 달달함이 매력인 식혜를 명절이 지나고 만들었다.
500G의 엿기름을 주문해 면포에 엿기름을 넣고 물에 30분 정도 담가 불린 후 주물주물 치대며 뽀얀 물을 우려냈다. 뽀얗게 우러난 물을 따라내고 다시 새로운 물을 추가해서 또 뽀얀 물을 우려내고 반복반복 하다 보니 6리터 가량 나왔다. 두 개의 큰 전기밥솥에 나누어 넣고 각각의 솥에 찬밥 한 공기, 설탕 2스푼 넣고 9시간 정도 보온모드에 놓고 띄웠다.
아침에 확인하니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떠있다. 동동 떠있는 밥알을 건져낸다. (나중에 끓여 식힌 식혜에 올리면 동동 떠 있는 밥알이 된단다.)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까지 잘 섞어 냄비에 끓인다. 끓일 때 설탕을 넣고 잘 저어가며 5~10분가량 끓여준다. 설탕의 양은 기호에 맞게 가감하면 되는데 3리터에 대략 한컵반 정도의 설탕을 넣은 듯하다. 끓일 때 생강을 조금 넣어주면 좋다는데 생강이 없어 생강가루를 조금 넣어주었다. 끓인 식혜를 베란다에 내놓고 다 식힌 후 병에 나누어 담았다. 색깔이 시판되는 것처럼 뽀얗고 예쁘진 않다. 좀 회색빛을 낸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맛은 엄마표 식혜만큼 깊은 맛을 내니 성공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달달한 게 생각날 때마다 마시니 다른 음료가 생각나지 않는다. 식혜는 너무 올드한 맛인가? 아이들은 가끔 한 번씩 마시고 이번에도 역시 남편과 나만 열심히 마신다.
음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먹고 싶어서 할 때와 의무적으로 해야 할 때는 맛이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아쉬운 건 이렇게 내 맘이 동해서 음식이 맛있게 되었을 때 맛있게 먹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포인트가 일치하지 않는 게 좀 아쉽지만 언젠가는 내가 해주는 식혜가 생각나고, 그리운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