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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ward Choi Dec 27. 2021

King Yuan ELECTRONICS CO., LTD

반도체 Testing Global No. 1

 King Yuan ELECTRONICS CO., LTD(京元電子集團)

TWSE Code : 2449

설립일 : 1987년 5월 28일 

종업원 : 7,275명(2020년 말 기준)

홈페이지 : https://www.kyec.com.tw/en


 모든 반도체는 패키징 전후로 성능 테스트를 통해 양품 여부를 확인하는 공정을 거치는데 반도체 패키징 위탁업(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중 테스트 공정("T-Test")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Wafer 가공이 완료된 후 프로브 테스트(Probe Test)를 통해 Wafer상의 불량 Die 위치에 Marking 처리하여 패키징시 불량 Die를 제외하고 패키징을 진행한다. 패키징 완료 후에는 최종 테스트(Final Test)를 통해 제품의 정상 작동 여부와 반도체가 필요로 하는 신뢰성을 검증한다. 

 완성된 반도체에 대한 테스트가 중요한 이유는 경우에 따라 반도체의 불량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폭풍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iP(System in Package)를 구성하는 작은 반도체가 불량 가능성을 갖고 SiP에 패키징 될 시, 이 여파는 SiP가 탑재되는 Set 제품(ex.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자동차 등)으로 이어진다. 최악의 경우, 해당 SiP를 탑재한 Set 제품의 전량 회수 혹은 리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패키징 품질 못지않게 테스트 품질을 중요시 여긴다. 고가의 고기능 반도체는 100% 테스트를 거쳐 출하되지만, 대량 생산되는 패키지들은 샘플링 테스트를 통해 불량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샘플링 평가라고 해서 무작위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메트릭스를 꼼꼼하게 설계하여 불량품의 유출을 원천 봉쇄한다. 

 OSAT업체 중, 이런 테스트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는데 이들을 "순수 테스트 업체(Pure Testing)" 혹은 "테스트 하우스(Test House)"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OSAT업체의 매출액 비중이 테스트 부문이 더 많을 경우를 테스트 하우스라고 한다. 


 OSAT업계는 패키징 & 테스트에 대한 분업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대형 OSAT의 경우, 고객사로부터 반도체 패키징을 수주할 때, 패키징과 테스트를 함께 수주하는 턴키(Turn-Key) 수주를 선호하지만 중소형 규모의 OSAT업체들은 대형 OSAT만큼 충분한 테스트 환경을 갖추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형 OSAT 역시 생산하는 모든 반도체에 대한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그래서 패키징을 위주 OSAT에서 처리하는 못하는 반도체의 테스트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들이 생겨 났다. 반도체 특성상, 특수 평가가 필요한 경우 혹은 패키징과 테스트를 분리하고 싶은 경우에도 테스트 하우스에 별도의 테스트 의뢰를 한다. 예를 들면 중국에 위치한 OSAT에서 저렴한 가격에 반도체 패키징을 완료하고 신뢰성이 높은 테스트 하우스에서 패키징 완료된 제품을 테스트하는 형태가 자주 사용된다. 

 이런 테스트 하우스 중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가 대만 미야오리현에 자리하고 있다. 

 



 KYEC는 1987년 대만 미야오리현에서 설립됐다. 설립 초기에는 Wafer Grinding(연마)와 Sawing(절단) 같은 비교적 단순한 작업만을 업으로 하는 소규모 OSAT 중 하나였다. 초기 자본금이 적다 보니 상위 프로세스로의 확장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상황이 이어졌다. 회사 설립 후 4년이 지난 1991년, KYEC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며 전혀 다른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금공 회장(李金恭 - 1956년생)은 해양대학 해운 관리학과를 졸업한 비(非) 전자업계 사람으로 대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태평산물보험회사(太平產物保險公司)에서 해운 보험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당시 대만은 해운 보험의 개념이 잡히지 않았던 시기여서 보험 판매 건수가 많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25세 되던 해에 친구들과 함께 타이베이에서 주택 중개업을 시작했다. 일본과 미국의 기업을 대상으로 주택 중개업을 했는데 높은 타이베이의 임대료로 인해 적잖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보험업과 주택 중개업을 통해 큰돈을 벌었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쉽게 번 돈이라 흥청망청 탕진했다고 한다. 

 이런 삶에 위기감을 느낀 이 회장은 다른 분야로의 도전을 시도했다. 당시 UMC의 반도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며 생산 공장 운영을 위한 인력 충원에 한창이었다. 이 회장은 타이베이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자신의 고향 토펀(Tofen)과 가까운 신쥬(Hsinchu) 과학단지에 있는 UMC 공장의 야간 근무 제조 엔지니어로 취업한다. UMC에서 일한 지 1년 후, 주간 근무로 전환되었고 이후 과장, 차장, 생산라인 관리자로 승진했다. 이 회장이 UMC에서 근무한 10년 동안,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와 관련된 자신만의 사업을 하기에 최적의 타이밍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했다. 


 1991년 이 회장은 UMC를 떠나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이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동성자동차회사(東昇汔車)의 부장이었던 소 서명(蕭瑞明-前KYEC 전무)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KYEC를 인수했다. 이 회장과 소 서명 부장은 KYEC 인수를 위해 2천만 위안(약 8억 원)을 투자했다. 이 회장이 KYEC를 인수할 당시 회사 규모는 종업원 50여 명에 매출액 5~6천만 위안(약 20억 원 ~ 25억 원)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이 회장이 UMC를 떠나 KYEC를 인수한 때는 세계 경기가 꺾이던 시기로 거침없이 성장하던 대만 반도체 산업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KYEC는 이후 몇 년간 생존을 위한 험난한 난관을 여럿 넘어야 했다.  


 1993년 반도체 테스트를 위한 Burn-in 사업을 시작하며 KYEC는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6년 테스트 사업을 Wafer 영역까지 확장하며 KYEC는 테스트 전문 기업으로 변모했다. 1996년 매출액 2.8억 위안(약 107억 원), 영업이익 8천만 위안(약 3억 원)이었던 매출은 상장 직전 해인 2000년에는 매출액 42억 위안(약 1,589억 원), 영업이익 12억 위안(약 445억 원), 영업이익률 28%를 달성했다. 불과 4년 만에 매출액 15배, 영업이익 150배 증가라는 믿지 못할 성장을 이뤄냈다. 

 2000년 결산을 끝낸 KYEC는 2001년 대만 증권시장에 입성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 그리고 KYEC 임직원들까지 KYEC가 최고의 몸값을 인정받고 비상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장밋빛으로 가득했던 KYEC의 앞에 뜻하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 KYEC의 매출 비중은 메모리 반도체가 60%, 시스템반도체가 40%를 차지했으며 400여 대의 테스트 설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메모리 반도체의 지속적인 호황과 주요 고객사인 대만 & 일본 메모리 업체의 선전을 예상하고 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설비 확충을 위해 100억 위안(약 4,000억 원)을 투자했다. 

 2001년 천정을 뚫고 치솟던 닷컴 기업들의 거품이 빠지며 반도체 업계에 한파가 덮쳐 왔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선전으로 대만,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휘청거렸다. 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설비를 선점하다시피 한 KYEC는 이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대만 증권시장에 상장된 2001년, KYEC는 연중 매출 예상액을 3차례나 낮추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KYEC는 2001년 ~ 2002년 2년간 막대한 손실을 냈으며 주가는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긴 투자자와 투자신탁회사들은 KYEC를 고소하기까지 이르렀으며, 2007년 고소가 모두 취하될 때까지 5년 동안 KYEC를 괴롭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닷컴 버블 붕괴로 인해 침체됐던 반도체 시장이 2년 만에 회복되며, 대규모 설비를 보유하고 있던 KYEC에게로 발주가 몰리기 시작했다. 2003년 KYEC는 최고 매출액을 경신하며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이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회사 가용 자금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영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볼멘소리가 나올 만큼 꼼꼼하게 따져가며 투자를 진행했는데 불과 5년 만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이 회장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금융위기로 인해 거대 IDM(종합 반도체 업체)뿐만 아니라 수많은 OSAT들이 적자로 인해 회사 경영에 큰 어려움이 있었으나, KYEC는 일시적인 적자에도 무리 없이 예정된 투자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KYEC Group 계통도

 KYEC는 2002년 중국 Suzhou에  KLT(Testing House)를 설립을 통해 중국 반도체 시장에 진입했다. 2005년 KLT 자회사로 ZKT(Packaging)를 설립하여, 중국 반도체 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패키징 & 테스트 사업을 확장했다. KYEC Group 전체 매출 구조를 보면 Wafer Probe와 Final Test의 비중이 약 78%, 반도체 패키징을 통해 약 20%의 매출을 얻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KYEC는 지난 2018년 DL-Tek이라는 소규모 OSAT를 인수해서 대만 내 패키징 능력을 확충했지만 대부분의 패키징 매출은 중국에 위치한 KLT & ZKT를 통해 일궈냈다.  

 당초 KYEC는 2021년 중 KLT를 중국 증권시장에 상장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대만과 중국 사이가 틀어지면서 KLT 상장에 대한 계획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KYEC에서는 최근 심기가 불편한 중국 정부 눈에 띌만한 사안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결정한 듯하다. 



 반도체 테스트 사업은 제품 생산을 위한 원부재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 테스트 하우스(Pure Testing house)의 재무제표를 보면 원료구매비용(매입채권)과 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테스트 하우스에게 있어 가장 큰 운영 비용은 테스트 장비의 구입, 업그레이드와 감가상각이다. 선단 공정의 발전을 통해 반도체의 성능이 개선되는 만큼 테스트 설비 역시 성능 개선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28um 공정을 적용하던 반도체가 세대 전환을 통해 14um 공정으로 생산이 되었다면 Wafer 상 집적도가 증가하면서 Probe 테스트 설비에서 테스트해야 하는 시그널 I/O(In/Out)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난다. Final Test 역시 Burn in Board 위에 실장 되는 Socket의 수가 늘어나면서 신뢰성 평가를 위해 인가해야 하는 전력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렇게 늘어난 시그널을 단시간에 테스트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이를 가동하기 위한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반도체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출시되고, 예전 모델들은 순차적으로 단종된다. 테스트 설비를 운용하는 테스트 하우스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제품의 테스트 수주를 위해서는 주기적인 설비 업그레이드와 다음 세대의 테스트 설비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셈이다. 


 다른 업체와 차별화되는 KYEC만의 강점을 꼽는다면 테스트 설비의 자체 개발이라 할 수 있다. KYEC는 오랜 설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테스트의 설비 일부를 내부적으로 설계, 조달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의 경우, 테스트에 사용되는 간단한 툴이나 Burn in Board를 자체 조달하기도 하지만 테스트 설비를 직접 만드는 곳은 없다. 

 고가 테스트 설비의 경우, 수십억을 호가하는데 이런 설비를 내부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다면 그로 인한 시너지는 고스란히 수익으로 돌아 수밖에 없다. 현재 KYEC에서는 4,500대의 테스트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약 15~20%가량이 자체 개발한 설비로 추정된다. 자체 개발한 설비는 비용 절감 외에도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설비 업체를 통해 구매한 설비는 개조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자체 개발 설비는 내부 소통을 통해 단시간 내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튜닝이 가능하여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1993년부터 이어진 KYEC의 반도체 테스트 사업은 반도체 테스트 업계에서 군계일학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글로벌 Top 50위 내의 반도체 업체들 중 58%가 KYEC의 고객사로서 우리가 한 번은 들어 봤을 법한 반도체 업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KYEC를 찾는 이유는 적기 공급이 가능한 대량 생산 능력과 다양한 반도체에 대한 폭넓은 테스트 경험, 품질에 대한 높은 신뢰 그리고 경쟁력 있는 가격 정책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서비스를 모두 제공할 수 있는 업체는 현재로서는 KYEC가 유일하다.  

 

 하기는 KYEC에서 제공하는 반도체 테스트, 패키징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다. KYEC는 반도체 테스트 전문업체로서 세분화된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하여 반도체 업체들로 하여금 필요한 서비스만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1990년대 초반, 50억 원이 채 안되던 KYEC의 매출액은 2020년 1조 원을 훌쩍 넘겼으며 영업이익 1,864억 원, 영업이익률 16%를 달성했다. KYEC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급증하는 반도체 생산량에 맞춰 테스트 생산능력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Chu-nan 공장과 Tongluo 공장을 확장하고 자동화 비율을 높여 생산성 개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KYEC의 넓은 사업 스펙트럼과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을 고객사로 둔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는 반도체 테스트 업계에서의 KYEC의 위상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미야오리 현에 있는 KYEC의 거대한 공장들은 오늘도 수많은 Wafer와 반도체 패키지에 대한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King Long Technology limited(京隆科技(蘇州)有限公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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