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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ward Choi May 14. 2022

반도체 시장의 경기 순환에 대하여-②

 반도체 공급망 안에서의 거시적 경제 전망

 반도체 산업에서의 공급망 관리는 그 중요성에 비례하여 무시무시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공정에 필요한 단 한 가지의 소재만 모자라더라도 Wafer 가공이나 패키징이 불가능하다.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Wafer 가공업체와 패키징 업체를 막론하고 소모성 제품에 대한 안전재고를 쌓아둔다. 보통 소재의 납기가 긴 경우에는 납기를 감안하여 3개월 이상의 재고를 준비해 두고, 납기가 짧은 경우에는 1~2개월 정도의 재고만을 운용한다. 이런 일반적인 규칙이 전 세계 팬더믹을 거치며 뒤집어졌다.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공급망 붕괴를 대비하여 기존의 재고 운용 기간의 2~3배에 달하는 재고를 쌓았다.   

  반도체 산업이 대세 상승기에 있는 경우, 충분한 재고는 최종 고객사의 발주 물량 증가 시,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있게 하는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경기가 꺾이는 시기에는 도리어 과도한 부담이 된다. 반도체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면 최대 생산량 기준 3개월치 재고가 순식간에 5~6개월치로 재고 소진 기간이 늘어난다. 내부 관리시스템에 의해 과다 보유 중인 재고가 부각되면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가장 먼저 재고 비중을 낮추기 위해 발주를 취소하거나 발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재고 관리와 생산 라인 운영을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일정 거리 이상의 제동거리를 필요로 한다. 반도체 패키징 라인도 이미 생산 중인 물량과 생산 계획이 확정된 물량이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생산 라인의 가동률을 낮출 수 없다. 다운 사이클에 진입했더라도 일정 기간 생산 물량은 유지되지만 소재 입고량과 발주량을 줄여 재고량을 줄이게 된다. 이 기간이 달리던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반도체 경기가 이미 하강 국면에 진입했음에도 반도체 제조 업체들과 납기가 긴 소재 & 설비 업체들은 아직 매출액에 큰 변화를 체감할 수 없다. 2022년 1분기 반도체 패키징 소재업체들을 중심으로 수주 절벽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반도체 OSAT를 비롯한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실적이 양호했던 것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업체들은 소재의 재고 소진에 대해서는 납기의 길고 짧음, 재고 보유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른 대응 방식을 취한다. 짐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의 제동 거리가 길고 속도를 줄였다가 높일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납기가 긴 소재들은 시황 변화에 늦게 반응한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 업체들은 납기가 긴 소재들에 대해서는 취소나 연기가 가능한 최근 발주분부터 물량 조절을 한다. 하지만 승용차와 같이 제동거리가 짧고 쉽게 속도를 조절이 쉬운 납기가 짧은 제품들은 미입고 된 발주물량을 손절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고객사 물량 대응을 위해 제품을 준비해둔 소재 업체들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EMS와 전자 기업들의 전자 제품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국 봉쇄라는 대외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이와 더불어 비대면 경제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팬더믹 초기보다 전자기기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만약 현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2분기부터는 시스템 반도체의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OSAT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Lead Frame base의 패키징 비율이 높을수록 매출 감소폭이 더 클 수 있다. 대만과 중국의 2 tier 업체들이 1차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저가 시스템 반도체는 수급이 용이하고 납기가 짧아 이미 최종 소비업체들의 손에 충분한 재고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위주인 우리나라 업체들은 당장 큰 타격은 없을 것을 생각된다. 그러나 올해 4분기를 전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물량 조절을 해야 할 정도로 반도체 시장이 침체되면 OSAT로 위탁되는 물량의 일부가 자사로 회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메모리 호황기를 대비해 인프라 투자를 적극적으로 한 OSAT업체들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 순환 사이클이 꺾일 경우, 현재 경쟁적으로 신축, 증축되고 있는 다수의 Wafer 가공 Fab. 에 대한 운영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대규모 자금이 투자되는 Wafer Fab. 들이 짧은 기간 내 동시다발적으로 착공되었기 때문이다. 가동 계획 역시 2020년, 2021년과 같이 초호황기를 기반으로 수립되었을 터이니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Fab. 의 생산 능력이 남아 돌 수 있다. 2~3년 후 공장이 완공되어 가동 준비를 마쳤을 때, 2021년과 유수한 수준의 반도체 상승기에 있지 않다면 대규모 Fab. 을 운영하기 위한 물량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분기마다 Foundry 위탁 비용이 상승하고 있지만 2025년 경이면 반대로 분기마다 위탁 비용을 낮춰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때도 최선단 공정 수행이 가능한 TSMC와 삼성전자는 위기를 피할 수 있겠지만 다수의 업체들이 경쟁 중인 차선단 공정 영역에서는 출혈 경쟁이 예상된다. 또한, 다수의 신규 반도체 공장들에 장비가 모두 채워지고 나면 신규 장비에 대한 발주가 감소하면서 장비업체들이 뒤늦게 수주 절벽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2007년과 2018년에 경험한 두 차례의 반도체 시장 다운 사이클은 블랙스완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찾아왔다. 고비 때마다 어느 누군가는 다운 사이클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겠지만, 당시에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이런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도리어 좋은 분위기에 초치지 말라며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2년에 마주한 현실은 마치 눈앞에서 언제든 달려들 것 같은 회색 코뿔소를 보는 듯 같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다운 사이클이라는 회색 코뿔소가 언제쯤 달려들지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시황이 좋아 모든 사람들이 희망에 차 있을 때, 다가올 어두운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는 큰 용기와 배짱을 필요로 한다. 함부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가는 자칫 염세주의자로 오해받거나 반사회적, 반회 사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기 쉽다. 그러나 일부 산업군의 반도체 수급 이슈에 가려져 있는 과도한 재고 이슈는 언제든 반도체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반도체 시장을 판단하기보다는 전후방 산업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패키징용 소재, 그중에서도 납기가 짧고 다수의 고객사를 두고 있는 특수성 덕분에 반도체 경기 변화를 조금이나마 먼저 체감하고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반도체 시장의 경기 하락 역시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럽다. 모쪼록 예상되는 다운 사이클로 인해 반도체 시장에 대한 충격이 최소화한 상태에서 이번 위기가 지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원소재 시장의 물량이 반등하고 이를 통해 반도체 시장에 대세 상승시기가 다시 도래할 때 조금이라도 먼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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