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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n 29. 2020

자존감과 성취감, 이게 전부다!

반복되는 실패에 바닥을 치고 끝내 올라오지 못하는 형과 처남을 보며.

한국에서 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인생에 부침이 없는 사람은 없다. 서른 살까지는 부모 잘 만나고 운이 좋으면 그런대로 부침 없는 삶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이상은 쉽지가 않다. 사업을 해도 거의 예외 없이 한 번은 망하게 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인생은 짧게 잡아도 70년인데, 그 안에 재벌이든 정치가든 혹은 고위공무원이든 한 번 이상은 풍파에 시달린다. 운 좋게 본인이 괜찮아도 부모, 배우자, 혹은 자녀들이나 형제자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친인척 비리에 휘말리는 것도 이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어느새 불혹이 넘어버린 나도 이미 부침을 겪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했다. 직장인은 사업가보다는 조금 평탄한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면 운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할 수는 없는 법이고, 가족이 생기고 늘어나는 기혼자는 미혼자에 비하면 그 평안함을 등락 없이 유지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나에겐 형이 하나 있다. 마침 아내에게도 오빠가 있다. 나이는 처남이 조금 더 많은데 둘 다 아직 오십 전이다. 그런데 둘 다 총각이다. 두 사람은 모두 지금 인생의 최악의 시기를 수년째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둘은 모두 어린 시절 매우 똑똑했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들이다. 물론 가정환경 역시 재벌이나 부자는 아니었을지언정 부족함 없는 중산층의 그것이었다.


나나 아내나 모두 짧지 않은 기간 각자 사업을 했고, 나름의 부침도 겪었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린 시절엔 형과 오빠에 약간은 가려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장남이 무조건 첫손이라는 집안에서 컸던 차남이니 그랬고, 아내는 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딸은 그저 곱게 자라 시집가기 좋은 직업을 얻어 결혼하면 된다는 장인어른이 지배한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의 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현저히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처남은 서른이 넘으면서 손을 쓸 수 없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형은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가 대학입시를 완전히 망쳤다가 실패한 20대 초중반을 보냈다. 서른이 지나서는 다행히 사오 년 간 꽤 오르막을 오르기도 했지만 길지 않았다. 올라온 길이 무섭게 30대 중반 이후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몇 년째 몸도 마음도 모두 바닥을 치고 있는 중인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서른 이전 독립할 때 부모님이 해준 지원금은 모두 흔적도 남지 않았고 아직도 해결 못한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처남은 서른이 넘어 사업을 하라고 등을 떠민 장인어른 때문에 사업체의 대표가 되어 사업을 했지만 기대와 달리 사업은 장인어른과의 갈등 끝에 소위 폭망했고, 부모님의 노후 자금까지 날리고 무려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첫 가출을 했다. 처가가 빚더미에 앉지 않는 선에서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처남은 동생의 결혼식과 조카들의 탄생도 모두 건너 띄고, 그렇게 수년이 더 지나 돌아왔다. 이후 평안하게 지내나 했지만 바로 얼마 전 장인 장모님과 충돌 후 두 번째 가출을 하고 만다. 오십이 내일인데 가출이라니.


아버지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똑똑했던 아들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등을 떠밀어 대학과 사업을 망치고, 부모님이 해준 경제적 지원도 모두 말아먹고 마흔 이후로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병을 얻어 중년인 나이가 되었음에도 재산 한 푼 없이 자기 방 한 칸 없이 사는 중이다.


아버지들은 여든을 목전에 두시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접어든 상태이고, 어머니들은 그저 안 됐다는 마음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오십이 내일 모레인 아들들을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도가 없음에 나와 아내에게 한탄을 하시거나 혹은 그마저도 못하신다.


나나 아내나 도대체 왜 형이, 오빠가 저렇게 사는지 안타깝기 그지없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두 사람은 나나 아내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도 많고 지능도, 학업 성적도 좋았다. 인생에 부침이 있는 것이야 우리도 그러했는데 도대체 왜 두 사람은 끝없이 바닥에서, 아니 더 바닥을 치는 것일까.


나와 아내가 어렴풋이 찾은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존감이다. 둘 다 자존감이 낮다. 이는 아마도 아버지들의 악영향이 아닌가 싶다. 나의 형은 아버지로부터 크리티컬한 수준의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약간은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데다 까다로운 성격에 본인에게 너무 높은 수준의 잣대를 언제나 들이대며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멀리한 덕분에 몸도 아프다. 정신적으로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은 인생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여자를 만날 때도 본인이 사랑하면 그만이라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본 경험만 있다. 결국엔 다 날리고 자기가 한없이 애정을 줄 수 있는 강아지, 고양이들만 남았다. 처남은 너무 과도한 기대에 주변의 생각에 비해서는 실패라고 할만한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그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학력은 유지했으나 이후 사업 실패로 본격적인 내리막을 걸었다. 원래부터 말수가 적어 내적으로 스트레스가 가득한 것 같고, 특히 사업할 당시 장인어른에게 억압받고 욕먹은 탓에 실패자라고 인식해버린 듯하다. 둘 모두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자존감을 완전히 삭제해버렸지 싶다. 각기 한 차례, 그러니까 형은 대학 실패 이후 직장을 찾으면서, 처남은 오랜 기간 가출 후 집에 돌아와서 조금 나아질법한 기회가 생기기도 했지만 몇 년 가지 못하고 또 내리막을 겪으면서 회복한 것 이상으로 심리적으로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다음으로는 성취감이다. 전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사업은, 혹은 인생은 한 번은 반드시 뼈저린 실패를 하게 마련이고 그 실패를 극복한 경험이 성공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를 이겨내는 힘은 바로 축적된 성취감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공할 때 얻는 성취감이란 주로 작은 미션 하나하나를 해나가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몇 년에 걸쳐 쌓이는 것이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언가를 해서 노력하기만 한다면, 너무 거대한 목표가 아닌 이상 운이 지독히 안 따르지만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증거가 내 역사에 쓰여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게 없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내가 해봤자 어느 정도 까지라는 패배의식이 있다. '해봤자 결국은' 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형의 경우는 자신의 분야에서는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 위치에 올랐었고 지금도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인생 자체가 실패한 인생이라는 마인드로 성인이 되었고, 이후로도 스스로에게 너무 까다롭고 높은 잣대로 힘들게 구는 성향 때문에 성취감을 쉽게 얻지를 못한 것 같다. 처남은, 사업 실패 이후론 아예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지 싶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처남은 형과 달리 말수도 병적으로 적은 편이라 도대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장모님이나 아내도 잘 모른다.


여기에 내리막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둘 다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이미 내리막인 40대 이후에는 심리적으로 회복의 의지가 있어도, 몸이 아프면 의지는 결국 쉽게 꺾인다. 몸 관리를 해오지 않았던 두 사람은 실제로 디스크와 당뇨를 비롯해 요즘의 40대치고는 너무 건강이 나쁘다. 아픈 사람은 의욕이 없고, 의지를 불태울 여력이 없다. 심리적으로도 아픈데 육체적으로도 아프니 노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육체노동은 사실 실패를 이겨낼 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땀을 흘리며 보내는 단순한 일과를 반복하는 속에서 정신이 깨어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면, 그마저도 할 수 없다.


오르막만 있는 인생은 없다. 누구는 시작부터 내리막으로 시작하고, 누구는 오르막만 지속되는 것 같다가 끝내 내리막으로 결론을 맺기도 한다. 언제 뭐가 오는지도 알 수 없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그렇지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저 두 사람 모두 학창 시절 서울 소위 8학군 내에서도 공부를 잘하던 양반들이고, 중산층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건강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용모도 번듯하고, 선생님에게도 기대를 받고 반장도 하며 모범생이기도 했던 사람들이 저렇게 된 모습을 보면 내 기분도 기분이지만 부모님들의 마음은 이미 썩은 지 오래다. 아마 모르긴 해도 본인들은 이미 약 없이 정상적으로 사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일 것이다.


딸에게는 어머니가,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무렵부터 친구분들 집을 보면 아버지와 장남이 사이가 좋고 원만한 가정이 없다 하면서 형을 안타까워했다. 나도 커가는 아들을 키우는 데 있어 때로 거대한 벽과 같은 막막함과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아들과 내가 아버지와 형처럼 될까 실제로 무서울 때가 있을 정도다.


형과 처남에게 최소한의 자존감과, 노력해서 원하는 바를 이뤄냈던 경험이 충분히 쌓여 있었다면 위기를 이겨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리막에서 힘차게 뛰어 경사를 치고 올랐을 거라 생각한다. 부와 명예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실패?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 안에 자존감과 성취감만 있다면,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과, 나의 노력이 결국엔 성공을 가져온다는 증거가 가슴과 머리에 있다면 실패 몇 번쯤 어렵잖게 이겨낼 수 있다. 부와 명예 같은 것들은 그런 경험을 반복하며 작은 성취를 몇 번 하다 보면 그냥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타인으로 하여금 존경하게 만드는 것도 부와 명예가 아니다. 실패를 이겨낸 성취와 거기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자신감과 태도가 타인에게 그 사람을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존감과 성취감은 성공의 기본 바탕이다.


실패하고 바닥을 치고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이겨낼 수 있는 자존감을 성인이 되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단단히 갖춘다면, 그리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믿음과 그 믿음의 근거가 될 경험만 갖추고 있다면 사업 실패나 그 어떤 실패도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이 아직 그런 시기가 오지 않았다면 대학교나 직장의 네임밸류, 연봉이나 직위, 겉으로 보이는 모습 따위보다 저 두 가지에 집중하길 바란다.


단언컨대 인생의 전성기는 저 두 가지를 갖춘 이후에 온다. 진정한 부와 명예는 둘 중 어느 쪽이든 저들 없이 따라오진 않는다고 믿는다. 저 두 가지가 없는 부와 명예는 단 한 번의 실패와 내리막에도 처절하고 처참하게 박살이 난다. 부모라면 다른 무엇보다 자녀가 저 두 가지를 갖추도록 인도하자. 그러면 자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독립해서 바로 설 수 있다. 끝으로 부디 건강을 유지하길 바란다. 건강하지 않다면 부모가 부로 뒷받침해줘도 공부와 학업으로조차 일가를 이룰 수 없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중년 이후의 삶은 성공해도 행복할 리가 없다.


자존감과 성취의 증거,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면 성공은 때와 크기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언제나 당신과 당신 자녀 곁에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 비록 지금 가진 게 없더라도 적당히 높은 자존감을 -알량한 자존심 말고- 갖고 있고 매일 작은 성취를 꾸준히 이뤄내며 살고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부자는 못 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충분히 남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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