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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l 08. 2020

부동산은 죄가 없다.

나 하기 싫은 일 남 시키지 말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 남에게 바라지마라

친일파, 친일파 욕하는 건 쉽다. 물론 나도 적극적으로 일제 수탈에 힘을 더해 자기 가문과 가족의 안위 그 이상으로 부와 명예를 위해 몸 바친 친일파는 욕하고 산다. 하지만 과연,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가족보다 내 나라 살리겠다는 독립운동을 누가 얼마나 할 수 있겠나 싶다. 내가 공무원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일제 정부가 와서 하던 일 계속하라 하면 내 가족 먹고살아야 하는데 안 하겠나. 비록 친일은 안 하더라도 가능한 직은 유지하고 먹고살 것이다. 그리고 훗날 그게 나중에 친일파가 되는 거라면 그건 좀 억울하다 느낄 것이다.


남 욕하는 건 쉽다.


급한 사유가 있어 내 아파트 내가 판다는데 기대 시세보다 싸게 판다고 아파트 주민들이 욕하고, 싸게 내놓고 거래하는 부동산은 협박에 시달리는 세상이다. 다들 근로소득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부동산이 돈이 되니 거기에 매달리고 산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은 아예 1주택자가 아니면, 심지어 1주택자라도 강남에 아파트가 있으면 욕을 먹는 것 같다.


물론 정책입안자들이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건, 그러니까 기재부나 교통부, 혹은 국회의원 중 해당 소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문제일 것이다. 그건 모 정치인의 주장처럼 아예 프로세스에서 배제되는 것이 옳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고위 관료나 정치인쯤 되는 사람들이 그만한 재산이 없기를 기대하는 것도 말도 안 된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교육도 돈의 영향을 받고 지위도 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윤리를 말하기엔 임기제인 선출직 관료나 일부 정년이 없는 고위직들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사업가로 20년을 살았는데 갑자기 어디 장관이 된다고 해서 그간의 사업가로서의 삶이 갑자기 청렴결백한 인간으로 변신할 수는 없다. 어차피 몇 년 후에는 다시 자기 자리로 갈 사람이니까 말이다.


청주 집 먼저 팔고 강남 집을 팔아 양도세 3억을 절세한다,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탈세라면 모를까, 당신 같으면 3억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서 날리겠나? (그거야 말로 병신이다.) 그도 연봉 2년 내리 모아야 3억이 안 되는, 퇴직하면 관직에서 내려오는 평범한 사람인데? 자식이 있고 노후가 있는데?


너무 과한 정치적 공격에 너무 지나친 기대다.


판검사나 경찰 등 직업윤리가 뒤따라야 하는 평생직 공무원에게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를 욕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


내 돈 100만 원에도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는 자가 남이 1억을 합법적으로 절세하고 불법이 아닌 방법으로 번다는데 욕할 자격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방향이 틀렸다. 비난은 자본주의 자체로 향해야 하고, 법의 중요성과 입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인 게 법치국가다. 법을 바꾸는 방법에 무관심한데 사회가 바뀔 수는 없다.


부동산이 특히 토지가 공공재라 여긴다면 입법을 촉구하라. 그게 아니라면 불법이 아닌 이상 용인하고 인정하며, 직업윤리에 의한 과정을 원한다면 법제도를 살피고 그에 맞는 프로세스를 법으로 보장하길 지역 정치인에게 촉구하라.


당신이 돈에 얽매이는 이상 정치인도 똑같고, 내가 불법이 아닌 일로 억울하면 고위 관료든 정치인이든 똑같이 억울하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법치국가 사회에서 가진 자라고 불법행위가 없는데 더 심한 잣대로 평하고 비난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부에 따라 벌이나 벌금도 가중치를 주게 하고 싶다면 그러한 입법행위에 힘을 더하며 법제화에 노력할 일이고 아니라면 그냥 묵묵히 자기 일이나 하는 것이 낫다.


개인적으로 환경과 토지는 재화가 한정적이고 그 영향이 너무 광범위하여 공공재의 성격을 일부 부과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가는 자본주의가 파국에 이르지 않게 하는 길이 아닌가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돈이 있어도 차도 마음대로 못 산다. 땅이 작아서 차가 무한정으로 늘어나게 놔둘 수 없어 판매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정이 이러이러하다면 그에 맞는 법을 만들어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과밀을 해소할 생각이 없는 정치인과 국민들이 저걸 할 수 있을까? 사실 과밀을 해소하는 쪽으로 노력하면 자본주의에 반하는 규제적, 모순적 성격을 띠는 제한을 주지 않아도 된다. 굳이 피자 한 판 중 한 조각에만 치즈와 고기를 몰아넣고 그 피자 조각을 먹겠다고 싸우지 말고 치즈와 토핑을 고루 분배하면 어느 조각이든 맛있을 것이다. 5천만에게 대한민국 땅은 결코 좁지 않다.


내로남불에, 내 돈은 이유가 있고 남의 돈은 부정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언론은 너무 원색적이다. 부디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나는 안 지킬 공명정대를 남에게 쉽게 함부로 들이대고 원하지 말고, 법과 시스템에 주목하면 좋겠다. 입법과 사법의 프로세스가 법치국가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니.





+ 직업윤리 얘기가 나와서 덧붙인다. 학창 시절 내내 직업윤리나 윤리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고 교육을 하지 않는데 우린 왜 직업윤리에 반하는 것에 비난을 가할까. 그게 그리 중요하면 교육과정에 넣고 잘 가르칠 일이다. 대학 입시에 불필요하고 인재육성에 방해가 된다고 무시하니 이 지경인데 그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 국민이 아니던가? 국영수 잘해 좋은 입시 결과 얻어 직업윤리에 대한 고민 없이 부와 명예를 위해 판검사, 의사가 되니 -직업윤리가 중요한 직업을 가지니- 이 꼴 아닌가? 아이들 교육에 열 올리는 부모들치고 대학 이름과 교과목 성적 이외의 가치를 중시하는 부모 보기가 드무니 필연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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