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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l 15. 2020

권할 수 없는 취미 두 가지, 그 두 번째.

단 한 번도 권해본 적 없다.

나는 좋다고, 신나서 즐기지만 남에게 권하지 못하거나 권하지 않는 나의 취미 두 번째 이야기다.


참고첫 번째는 이것이었다.

https://brunch.co.kr/@balipilen/16






이야기는 위 글 '날라리들'에서 이어진다.


학창 시절 날라리의 기본 아이템은 누가 뭐래도 담배다. 80년대든 90년대든, 아니 아마도 지금 중고딩 역시 담배가 1착 아이템일 것이다. 삐뚤어진 교복 차림으로 꼬나문 담배야말로 날라리의 기본(?)이다. 내가 학창 시절 같은 반 아이들 중 흡연을 하는 걸 처음 본 것은 대충 중3이었지 싶다. 중2 때는 들은 적은 있어도 직접 본 적은 없는데 중3 때는 몇 번을 보았다. 3학년 날라리 애들이 2학년 짱이 버릇없다고 소위 다구리를 놓으려고 함정을 파고 2학년 화장실로 몰려갈 때 정확히 왜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부반장이었던 친구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일종의 초대 같은 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화장실을 발로 뻥 차고 문이 벌컥 열렸을 때 그 2학년 애가 담배를 물고 창가에서 뻔히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게 처음 교복 입고 담배 피우던 아이를 처음 본 게 아니었나 싶다.


이후로는 반 애들과 인근 상고 여자애들이 골목에 짱 박혀서 피우던 걸 본 적이 있는데 곧 교복이 없는 고교로 진학하면서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장면은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되었다.


한편, 내 주변에서 담배를 가장 많이 피우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하루 세 갑을 피우셨는데 대충 듣자니 이제 50년이 넘으셨고 그중 30년은 하루 세 갑, 20년은 한두 갑을 피우셨다.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아버지의 폐는 내내 깨끗하다. 어린 시절 포니2를 탈 때 아버지가 앞 창문을 살짝 열고 운전하시며 담배를 피우시던 기억이 난다. 형과 나는 정말 질색이었는데 쌍팔년도에는 차내 흡연이나, 자녀 동반 흡연에 아무런 이슈가 없던 시절이라 우리는 그냥 참고 남자 어른들은 그냥 당연히 피우는 거라 여겼던 것 같다. 흡연은 집에서도 계속되었고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 -주로 2~3보루를 한 번에 사곤 했다- 은 거의 내 담당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솔'로 시작해서 중간에 한동안 말보로가, 그리고 담배심부름 후반기에는 마일드세븐이 주력이었다. 아무튼 난 군 제대 후 독립할 때까지 집에서 내내 담배연기를 맡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담배는 군에서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건 형도 마찬가지.


담배는 백해무익하다. 일견 돈을 연기에 실어 날리는 행위인데 냄새도 고약하고 몸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 피운 후에도 잔내가 역겹다. 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20년을 담배 냄새와 함께 살다시피 했고, 간접흡연을 40년을 했지만 여전히 싫다. 다만 군생활 때나 사회생활에서나 남자들 세계에선 비흡연인 내가 마이너였기 때문에, 그리고 담배 따위로 유난히 구는 게 싫어 언제나 별로 내색하지 않고 넘어갔다. 실제로 싫어하는 정도 대비해서 아주 잘 참기도 하고 그냥 넘기기도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한민국에서 비흡연자에게 좋은 세상이 온 지, 흡연자를 반 범죄자 취급한 지 -그룹 임원 회의나 사장단 회의가 있던 비흡연 구역인 회의실에서, 심지어 회의 중에도 담배를 피우셨다는 무용담을 말씀하시던 나의 아버지도 집에서 베란다로, 베란다에서 아파트 앞 흡연구역으로 쫓겨나실 정도이니- 이제 겨우 10년 즈음이고, 지금 나는 그런 한국이 아닌 담배, 흡연 친화적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피운다.


다만 담배가 아닌, 담배의 대마왕 쯤 될 것 같은, 담배가 파충류라면 공룡급인 Cigar, 시가를 피운다.(씨가라 해야 더 발음이 와 닿으니 여기서는 씨가라고 부르겠다.)


씨가. 일단 나는 내 주변에 씨가를 피우는 사람은 전무했다. 씨가는 오토바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내 주변에서 권하지도 않았고 평소 관심 1도 없던 것이다. 씨가에 대해서 난 그저 우리 조던 형님이 아주 그냥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사랑한다는 것만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저건 왜 피우지 라는 생각과, 씨가가 의외로 많이 판매 중이라 자주 눈에 띈다는 것에서 관심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처럼 공부로 시작했다. 한국엔 자료가 많지 않고 잘 정리해둔 사이트도 별로 없었다. 우선 cigar aficionado에서 정보를 접하고, 입문자들의 경험과 실수 등을 위주로 알아갔다. 바이크도 그랬듯 이 과정에서 몇 달을 소모했다.


씨가를 전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기본적인 차이를 말하자면, 씨가는 담배와 달리 들이마시지 않는다. 간단히 시각적으로 체급 차이가 나는 것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씨가는 담배보다 훨씬 독하다. 담배 중 독한 놈이 벤텀급이면 씨가는 기본이 헤비급이다. 그 씨가를 너무 빠르게 피우거나, 실수로 속으로 들이마시거나, 입문자가 독한 걸 피우거나 하여 '씨가 펀치'를 맞으면 심하면 그 날 10시간 넘게도 구역질과 어지러움을 겪을 수도 있다. 다만 마시지 않기에 폐암과는 큰 연관성은 없고 외려 구강암과 관련이 있다. 독한 연기를 입에 머금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들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은 바이크를 타면 교통사고로 죽거나 불구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씨가를 하루에 몇 대를 수십 년을 피운다면 가능성이 높지만, 나처럼 일주일에 한 대도 피우지 않는다면 그런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뭐든 하기 나름이다.


씨가는 크기가 피우는 습관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한 대를 피우는데 대개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을 즐기는데 그 시간이 온전히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이다. 아내도 아이들도 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맛은 취향이니까, 그리고 이 역시 권할 취미는 아니라 그 맛에 대해 적지는 않겠다. 다만 씨가는 페어링이라 하여 위스키, 코냑, 와인, 커피, 초콜릿 등과 함께 즐기며 풍미를 더욱 깊게 즐길 수 있고, 파트너가 있다면 대화의 밀도를 높이는데 좋은 촉매가 된다. 라이딩 버디가 있다면 씨가 버디도 있다.


여행을 갈 때는 나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꽤 멋스럽게 챙긴다.


내가 피우는 씨가의 가격은 한 대에 대체로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 선이다. 큐반, 넌큐반을 가리지는 않지만 넌큐반을 좀 더 자주 피우고, 약간 마일드하면서 구하기 까다롭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매년 주요 매체에서 좋은 평을 받은 씨가 중 여기서 파는 걸 위주로 5~10대 정도 구입해서 보관해둔다.


내가 집에서 씨가를 피우면 아내는 가끔 담배 피우냐며 눈을 흘기는데, 뭐 십수 년을 비흡연자로 봐온 남편이 씨가를 피우니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집안에서 피우는 일은 없다. 씨가 클럽에 가지 않는 이상 난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야외에서만 피운다. 카페 흡연석이라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피운다. 담배 흡연자라도 씨가는 또 다른 종류이기 때문에 매너를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종종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와서 물어야 편하게 대하는 정도다.


집 중정에 홀로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한 대 천천히 피우고 나면 바로 양치질을 하고,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한 달에 네 대를 넘기지 피우지 않고, 가족에게 간접흡연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이것이 나의 씨가 규칙이다.


이것만 지킨다면 십수 년 무사고로 즐기는 라이딩처럼 씨가도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난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비흡연자이고, 담배 냄새를 싫어하며, 앞으로도 비흡연자일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만도.


아, 하나 더. 한국 같은 상황에서는 권해도 피울 장소가 없다. 단독주택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여기저기 대부분 다 흡연금지구역이고, 맘 놓고 피울만한 씨가클럽도 몇 개 없는데 더 이상 허가도 나지 않는다. 권할래야 권할 수도 없는 취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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