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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May 15. 2020

내가 편한 건 누군가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서울이 편하고 살기 좋은 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편에서 고생하기 때문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은 살기 편하다. 단언컨대 세계 유수의 도시 중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더 잘 사는 나라에 가도, 더 좋다고 하고 유명한 도시에 가도 서울 같은 편리함을 주지는 않는다.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 등에 가면 한국보다 선진국인데도 상당히 불편하고 행정이 느리고 여러모로 소비자 중심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의외로 느리고 불편하다.


왜?


대다수의 국가는 일하는 시간이 비슷하고 또 명확하다. 그리고 법과 관습이,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 더 뻔하다. 한국의 편리한 새벽 배송과 당일배송은 누군가의 야근, 새벽 출근을 필요로 한다. 나는 좋지만 누군가는 내가 잘 시간, 쉴 시간에 일해야 한다. 물론 그런 일자리는 누군가의 생계를 돕지만 그런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전 국민의 20퍼센트 이상이 몰려 사는 도시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그런 틈새 직업이나 직군이 유의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도시로 들어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한국/서울처럼 국가 인구 대비 특정 도시 인구 비중이 높지 않다. 골고루 퍼져 살면 그런 틈새시장은 효율성이 현저히 낮아 그런 일자리가 생기기 어렵다. 일제시대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가 전통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대한민국도 지금처럼 서울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밀도가 낮으면 그런 일자리가 생길 여지는 줄어든다.(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생긴다고 투잡, 쓰리잡 뛰면 집을 살 수 있는가에 있다. 집값은 훨씬 가파르게 뛴다. 오늘을 희생하고 쳇바퀴 뛰어봤자 밝은 내일은 어지간해서 오지 않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배달인력, 퀵서비스를 통해 편리함을 얻지만 그게 비정상이라는 것에는 눈을 돌린다. 10분 만에 배달이 되려면 교통신호 따위는 지키기 어렵고 다치면 다 본인 책임이 되고 오토바이는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심 없다. 배달이 늦으면 화를 내지만 적법하게 하면 소비자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 널리 통용되는 상황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리함만 취한다.


퀵 서비스나 배달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다수의 만족을 위해 소수를 이용하고, 일부의 희생을 강요하고 심하게 말하면 갈취하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고 있다.


핸드폰이 없거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다수의 금융제도나 신기술은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지고, 여기서 진짜 문제는 정부가 그런 기술을 공인해주고 민원서비스나 정부/공기관의 서비스에 그걸 필수 사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 거주자, 재외국민이 뭔가 이용하려면 한국 휴대폰 없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공인인증서가 없어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본인인증이 된 휴대폰만이 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다. 해외 주재원이나 해외에서 사업하는 한국 사람들이 전혀 사용할 일이 없는 한국 휴대폰을 가끔 필요한 민원서류나 행정 처리를 위해 기본요금 다 내가며 몇 개월에서 몇 년을 유지해야만 한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저소득, 빈곤층 다자녀 가구들이 노트북을 어떻게 장만하고 그 제도를 이용하게 할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10살 초등 3학년생과 8살 쌍둥이 1학년이 온라인 수업을 받으려면 부모 중 하나는 애들만 봐야 하고 하나면 되었던 노트북이 몇 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자잘한 문제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수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행정이 빠른 것이다. 고려할 사항들을 세세하게 고려하면 행정이 빠를 수가 없다.


범죄피해자들이나 사건 사고의 피해자들은 언제나 소수이고 그들에게 가는 관심은 잠깐이고 그게 민식이법처럼 뭔가 내 생활에 불편이나 불이익을 줄 것 같은 가능성만 보여도 모두 몰려 욕하고 제거하려 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수에, 메이저에, 메인 스트림에 속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도시, 아파트, 수입차/고급차, 남들 다 사는 명품 가방과 옷, 유행하는 것에 뒤쳐지면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속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려 노력하고, 그 안에 들어가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럼 너도 이 안에 들어오던지?


엄청나게 써대는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지 관심 없다. 그저 내가 오늘 못 쓰는 게 불편할 뿐이다. 그것들은 어느 섬에 쌓고 태우면 그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내 생활권에만 영향이 없으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중국에서 오는 쓰레기와 오염에만 열을 올린다. 우리의 쓰레기는 못 사는 나라로 수출하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편리함에 취해 조금의 불편함도 참지 못한다.


많은 나라들, 많은 다른 도시들에서 한국이나 서울의 편리함을 찾기 어려운 건 때로 불편함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이게 정상이다.


투잡 쓰리잡 뛰어 집 장만이 가능한 세상이라면 순기능이 있겠지만 서울은, 대한민국은 이미 그런 세상이 아닌지는 오래되었다. 악순환만 있다는 이야기다. 그 악순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어떤 방면이든 다수에 속하기 위해 살고, 악순환에 빠진 소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편리함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는 잘 살 수는 있어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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