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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Jun 13. 2019

기생충, 그 역겨움에 대하여 (2)

두 가지 키워드로 보는 영화 '기생충' part2

<리뷰 part1에 이어서 쓰는 리뷰 part2>

https://brunch.co.kr/@ballack08/28

처음 '기생충'을 보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영화 잘 봤다'라는 개운함보다는 영화의 핵심은커녕 겉핥기도 제대로 못했다는 찝찝하고 무거운 마음이 더 컸다. 다시 한번 봐야 제대로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주일이 지나고서 두 번째로 '기생충'을 봤을 때, 첫 관람에서는 눈치채지 못한 키워드 하나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영화 초반부를 다시 떠올려보자. '기택' 일가족이 거실 바닥에 앉아 피자 박스를 접던 와중에, 동네 구석구석을 소독하는 매캐한 연기가 창문 틈으로 가득 메워지는 그 장면 말이다. 사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아주 천천히 클라이맥스로 올라가기 위한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집 안 전체를 가득 메우는 매캐한 소독 가스 냄새를 억지로 마시면서 피자박스를 하나하나 접어가는 '기택' 일가족들로 시작하는 '냄새' 시퀀스는 90년대, 2000년대 초반 여름철이면 동네를 가득 메우던 익숙한 소독차의 향수를 자극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으로 점점 끌어들인다.



피자박스고 뭐고 숨막히다니까!


이 소독 가스 냄새는 영화를 관람하던 관객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오히려 영화 속 '기택'에게는 탁자 위를 제 집처럼 기어 다니는 꼽등이와 바퀴벌레를 박멸하기 위한 유용한 매개체로 인식되지만, '기택'을 제외한 나머지 일가족에게는 소독 가스가 헛기침과 괴로움을 유발하는 고통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이 장면에서부터 '냄새'는 맡는 사람에 따라,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 지극 '상대적인' 혹은 '이질적인' 매개체라고 규정짓는다. 한 상대적이고 이질적인 '냄새' 영화 중반에 '기택'의 일가족이 가정교사, 운전기사, 가정부로 성공적으로 '최 사장'의 집에 안착하고 각자 맡은 배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하는 안정적인 상황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게 된다.


"어? 똑같은 냄새난다?"

사실 살면서 발 냄새나 겨드랑이 냄새 같은 특정부위의 냄새가 아니라면 자신의 체취를 직접 맡아볼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자신의 주거환경이나 유전적 이유 혹은 그 날 바른 스킨, 로션 등으로 인해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고, 독특하게 형성되는 이 체취는 남들이 맡을 때 보다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오, 스킨 냄새 좋다." 내지는 "뭔 개 같은 냄새야 이게."와 같이 넌지시 새어 나오는 말들과 함께. 이러한 체취는 특히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들어간 경우라면, 그 이질감은 배가 된다. '기생충'에서는 아직까지 많은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다시 말하면 가장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순수한 어린 '다송'의 후각으로 보다 선명하게, 박 사장네 일가족들 중 가장 먼저 그 이질감을 인식한다.


이 이질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기택'이 "이제 빨래도 다 따로 하고, 섬유유연제도 각자 다른 걸로 써야 하는 건가?"라고 묻는 말에 '기택'의 아내는 냉소적으로 "반지하 냄새야, 반지하 냄새. 요 냄새가 다 옷에 배긴 거지."라고 말한다. 반지하 특유의 그 꿉꿉하고, 농도가 더 짙은 그 냄새. 이 냄새는 '박 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지하철 탈 때 나는 그 냄새'이자, 영화에서 설정한 위아래의 계층구조에서 빈곤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상류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그들의 학력, 출신성분을 속인 채,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온 '기택' 일가족의 실체는 결국 지워지지 않는 반지하의 그 꿉꿉한 냄새일 뿐이자, 결론적으로는 그들이 원하 것처럼 상류층으로올라갈 수 없는 경직된 계층구조의 한계 보다 명확히 말하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고, 유쾌한 과정들이었을지 모르지만...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이런 거 없냐?

하지만 이러한 '기택' 일가족의 냄새는 '기택'을 중심으로,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행위가 빈번해지고, 노골적일수록 그 농도가 더욱 심해지고 독해져 간다. '기우'의 경우 대학을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단순히 '친구의 추천'이라는 그럴듯한 이유 때문에 위조된 학력증명서를 내밀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점차 그 합리화는 대범해진다. '너라면 다혜를 맡기고 갈 수 있다'라고 말한 친구를 능욕하는 것 마냥 "다혜가 대학 들어가면 사귀자고 할 거예요. 진지하게."라고 친구가 했던 말을 똑같이 말하며 결혼을 운운하는 모습은 불쾌함을 유발한다.



제시카 외동딸

'기정'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는 그럴듯한 설정과 인터넷에서 본 심리치료 전문용어로 '박 사장'의 아내를 감쪽같이 속인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택'을 운전기사로 꽂아 넣기 위해 은근슬쩍 그의 차에 속옷을 욱여넣으면서, '박 사장'의 상상력의 브레이크를 앗아버리고, '김 기사'를 내쫓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전과는 다르게 직업을 갖고, 자리를 잡고 있던 사람까지 몰아내면서 '기택'의 가족들이 점점 일종의 '선'을 넘기 시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선'을 넘는 행위는 지하벙커의 '근세'와 '문광'을 마주하고,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한'기택' 일가족들의 필사적인 저항의 크기와 비례하여 결국에는 '문광'이 '기택'의 아내의 발길질에 계단에서 굴러 숨지는, 살인까지 치닫는다. 이렇게 '기택' 일가족들이 저지른 행동들은 걷잡을 수 없이 사태를 키우게 되고, 결국에는 '박 사장'의 소파에까지 그 냄새를 남기면서, 냄새가 퍼지는 그 범위가 사람과 사람 간의 밀접한 거리에서 거실 한복판의 소파 위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냄새의 범위는 종국에는 집 밖의 정원 한복판까지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기택'이 차 안에 가득 메우는, 씻지 못해 비와 함께 뒤섞인 반지하 냄새는 그들이 행한 일련의 행위들의 의미를 구체화하며, '박 사장'의 아내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정원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냄새' 시퀀스의 방점을 찍는다. 지하실에서 아내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이끌고 올라온 '근세'가 '기우'의 대가리를 부수고, '기정'의 심장에 칼을 꽂으면서 시작되는 피의 복수극이 '기택'의 아내에 의해 제압되고, 그 와중에 혼절한 '다송'을 병원에 후송하기 위한 박 사장과 그와 무관하게 살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엉켜있는 상황 속에서도 '냄새'는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기택'이 '박 사장'에게 내던진 차 키를 '박 사장'이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코를 막고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드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지하벙커에서 제대로 씻지 못한 케케묵은 체취와 짙은 피 냄새가 버무려진 그 악취를 등지고 나가는 그 모습 이후에 '기택'의 일그러지는 표정이 '박 사장'에게 칼을 꽂지 않던가. 결국 상류층을 갈망하고, 빈곤층을 상징하던 그 '냄새'는 지하벙커와 반지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피와 분노를 머금고 결국 2층 저택의 정원에서 역전된 상하구조의 종말을 맞이한다.



두 번째로 영화를 보고 나와서 버스를 타는 길에 문득 그런 노래가 떠올랐다.


그대의 모션(motion)은 더러워
그대의 냄새는 지겨워
아무리 감추려 해도

비집고 나오는 손톱은
으스러진 몸을 긁어와
우아한 손짓으로 또
이리 오라고 얘기하네


메스꺼운 색으로 이미 한쪽 눈을 잃어 괴상한 소리로 우는 넌
음흉한 환상에 사정없이 너를 몰아세우고 끔찍이 우는 넌


그대의 모션(motion)은 더러워
그대의 냄새는 지겨워
아무리 감추려 해도

<국카스텐. 매니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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