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뜸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커피숍 앞 벤치에서 담배를 태우던 나에게 진한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 친구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저런 질문이나 하고 있으니 소위 말하는 '도를 아십니까'하고 일장연설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질문한 사람 예의가 있으니 대답은 해줘야겠지.
"글쎄요, 딱히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가 몇 살까지 살아야겠다 내지는 몇 살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 않아요?"
"뭐, 제가 몇 살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봐야 뭐하겠어요, 그건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알아서 흘러갈 운명인데."
평소였다면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하면서 자리를 회피했을 터이지만, 그 날은 왠지 하는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허허, 대성하시겠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딱히 그 사람이 궁금하지도 않았건만,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었다. 지갑 한편에 '국가공인 기술: 전기기능사'라고 쓰여있는 자격증을 자랑스레 보이며 제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새 무슨 일 하고 계세요?" 노란 머리가 물어보았다.
"그냥 공장에서 일이나 하고 있죠."
"그럼 원래 하고 싶은 일은 뭔데요?"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나, 어떤 일이냐 하면서 피상적인 질문이나 던졌을 것이다. 지금껏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백이면 백, 모두가 그렇게 물어왔으니까. 문득 노란 머리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여태껏 듣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새 글 쓰는 거 준비하고 있어요. 이것저것 다 써 보면서." "그러면 당신이 생각했을 때, 자신의 글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뭐라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자신의 쓴 글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라든지, 구절이라든지. 오래 생각해보세요. 천천히" 글을 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나름 애착이 가는 글들이 있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준 글이나, 나름대로 잘 쓴 것 같아 스스로 만족하는 글. 근데 뭐라 한 단어로는 요약하기 힘든 글들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다, 처음 펜대를 굴려 쓴 글이 생각났다. 친구랑 술 한 잔 먹고서 두서없이 써 내려갔던 글이었다. 전에는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지만, 그날은 왜인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 술을 먹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매일같이 글을 쓸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이런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은 영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었다.
"잘 모르겠네요. 딱히 한 마디로 정의하긴 뭣한 글들이라." 노란 머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가방에서 낡은 노트 하나를 쥐어줬다.
"선물이에요. 이걸로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자신도 요새 곡을 쓰고 있다면서 동질감을 느낀 건지 대뜸 자신의 노트를 주는 것이 썩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저는 10월에 공연합니다. 나중에 구경 오세요. 아, 저는 오늘 여기 없는 겁니다? 비밀로 해주세요."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동아리에 소속된 사람인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디서 본 적이라도 있는 것 마냥 이야기하는 것이 기분이 썩 오묘했다. 단순히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담배 두 개만 주시겠습니까?" 두 개비 남은 담뱃갑에서 하나를 꺼내 주었다.
"돛대예요. 두 개비 남아서 하나만 드릴게요." 불을 붙이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노란 머리가 일어났다.
"좋은 글 많이 쓰시고, 고맙습니다." 뭐 담배 몇 개비 빌려준 게 고마울 일이라면 고맙겠지.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처음 본 사람과의 기묘한 대화도 끝이 났다. 끓는 침을 연신 뱉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