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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38. 동부 해안선 하오씽(2)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전날 사귄 친구와 함께한 타이동 동부 해안선 하오씽.

투어 하는 내내 너무 더워서 둘 다 “으아! 너무 덥다. 에어컨 어딨냐~"라며 에어컨 있는 곳만 찾아다녔는데,

삼선대 관광을 마치고 버스를 타자마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 망했네. 망했어. 비 올 것 같아.”


친구와 함께 대만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비가 내렸는데, 정작 목적지에 도착할 때는 비가 그쳐서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더욱 좋았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동하교였다.

동하교


처음에는 다리 하나만 덜렁 있어서 그다지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동하교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길래 나도 따라서 보니까, 뗏목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뗏목 체험 중인 사람들


뗏목체험 중인 사람들이 손을 흔드니까 다리 위 사람들도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로 누군지 몰라도 이렇게 오고 가는 정이 너무 좋다. 대만 사람들 정말 귀엽지 않은가?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친구가 갑자기 “언니! 언니!”라며 나를 다급히 불렀다.

“왜? 무슨 일이야?”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둘러 다가가니, 커다란 야생 원숭이가 다리 난간에 앉아서 사람들을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가오슝과 컨딩에서도 야생 원숭이를 참 많이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원숭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신기해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조심해”라며 주의를 주셨다.


여기에도 원숭이가 있었다!


그렇다! 동하교는 바로 원숭이 천국! 원숭이 세상!

친구와 원숭이를 더 많이 찾아보자며 다리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길에도 원숭이가 돌아다니고, 나무 위에도 원숭이들이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원숭이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널려있었다. 몇 번이나 원숭이 배설물을 밟을 뻔하자, 원숭이를 더 많이 보겠다는 나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으아…안 되겠어. 원숭이 응아가 너무 많다. 빨리 돌아가자.”

라며 다시 서둘러 다리를 건넜다.



마지막으로 사색하는 원숭이를 한 번 더 찍어주었다ㅎㅎ

하지만 야생동물을 목격하면 꼭 멀리서 구경하고, 절대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진짜 중요!)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기 원숭이 2마리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귀엽다며 근처로 다가갔는데 아기 원숭이들이 그 아주머니를 공격하려고 달려들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원숭이들의 공격을 피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정말 깜짝 놀라버렸다.


아무리 귀여워도 야생동물은 야생동물이니까 목격하면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만 보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원숭이 나라.. 아니 동하교를 뒤로 하고 동부 해안선 하오씽의 마지막 코스인 두란설탕공장 문화원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과거 일본 시기, 설탕공장으로 운영되던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설탕을 생산하는 대신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두란설탕공장 문화원구


부지는 꽤 넓었으나 생각보다 볼 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사진촬영이 금지인 곳이 많았다.


대만은 남부로 내려가면 이러한 설탕공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타이난 쪽에도 많다.)

대만은 네덜란드 시기에 본격적으로 사탕수수 재배가 이루어졌고, 일본은 이러한 타이완산 설탕에 의존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은 대만 지배를 본격화하면서, 네덜란드가 다져놓은 설탕 제조 기반 위에서 대만의 설탕 산업을 계속 발전시켰다.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을 접수하자 국민당은 대만의 제당업을 더욱 발전시켜 외화를 벌어들였고, 그렇게 1960년대에는 대만 전체 수출액의 8%를 차지할 정도로 설탕 산업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설탕 제조 원가가 오르면서 국제 설탕 가격이 하락하자, 대만의 제당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먹는 타이완사> 중에서


결국 남게 된 설탕공장들은 도시 재생 산업의 일환으로 대만의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제공되었고, 현재는 문화, 예술,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장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둘 다 두란설탕공장 문화원구를 구경한 후,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그리고 아메이족 전통술을 만드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시음도 해보았다.



쌀에 여러 약초를 넣어서 만든 술이라고 하는데, 맛은 우리 막걸리와 매우 비슷했다.

친구는 “이거 한 병 사서 이따 밤에 먹자.”라며 가장 작은 크기의 술을 한 병 구입했다.



이렇게 두란설탕공장을 끝으로 우리의 동부 해안선 하오씽 여행은 끝이 났다.

혼자 왔다면 외롭고 심심했을 수도 있었던 이 투어에 대만 친구가 함께해 줘서 더욱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동부 해안선 하오씽 여행은 끝났지만, 여기서 이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아쉽다.

오늘은 일요일!


친구는 타이동에는 타이동 관광 야시장만 있는 게 아니라며 일요일은 쓰웨이 야시장이 열리니까 그곳에 가자고 제안했다. 대만 사람과 함께 하는 대만 야시장이라니 너무 좋았다! 숙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바로 야시장으로 나갔다. 타이동 관광 야시장도 꽤 규모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쓰웨이 야시장은 규모가 훨씬 컸다.


타이동 쓰웨이 야시장


갓 튀긴 치킨도 조금 사고,



점심때 먹었던 루웨이도 구입했다.


오리 머리


여기도 오리머리가 있었다. 대만을 여행하면서 오리 머리를 참 많이 보았다.

친구에게 “너도 이거 먹어?”라고 물어보니 친구는 오리 머리가 너무 맛있다며 추천했다.

대체 먹을 데가 어딨냐고 하니, 양념과 껍질?을 먹는 거라고 설명해 줬다.

내가 오리 머리를 구경하고 있자, 친구가 “오리 머리 말고 목이랑 날개 먹자. 그 부위도 맛있어.”라고 했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꽈바오가 먹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친구가 그걸 기억하고는 꽈바오 가게를 찾아줬다. 덕분에 꽈바오도 구입할 수 있었다.



마실 것도 필요하다며 타이동에서 딱 하나뿐인 밀크샵도 같이 갔다.

SNS에서 어떤 사람이 ‘대만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음료 집’이라며 밀크샵을 추천하길래

“이게 그렇게 유명해?”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음, 난 그냥 그런데.. 궁금하면 우리 한번 가보자.”라고 해서 궁금했던 밀크샵에서 음료도 사봤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음료 가게들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이 친구는 외국인이 내가 좀 더 다양하고, 독특한 대만의 음식들을 먹어보길 바랐다. 대만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재미있는 대만 이야기를 써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먹다가 중간에 찍어버린 우리의 만찬


민박집에 돌아와서 친구와 함께 야식 파티를 했다. 음식들은 조금 식었지만, 치킨도 너무 맛있고, 야시장에서 사 온 루웨이는 정말 최고였다.


야식을 먹으며 친구와 함께 대만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새로운 룸메이트가 방으로 들어왔다. 핑동 친구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그 친구에게 같이 야식을 먹자고 권했고, 그렇게 우리는 셋이 함께 야식을 먹으며 빠르게 친해졌다.


이 친구는 화롄에서 온 친구였는데, 수공예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실 뭉텅이를 꺼내서 순식간에 실 팔찌 하나를 만들어줬다.



“네 환도여행을 응원할게, 이건 선물이야!”


핑동 친구는 대만에도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 살인 사건도 있어!라고 했지만, 역시 나에게 대만은 좋은 사람들이 많은 친절한 나라였다.


오늘 하루 나와 함께해 준 고마운 친구 덕분에 나의 대만 여행은 더욱 찬란해졌다.

꼭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서 핑동 친구와 또 여행하고 싶다.







사실, 위에서 생략한 내용이 있었는데..


우리는 원래 버스를 타고 민박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둘이 타이동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뒤에서 어떤 노숙자 아저씨가 50 대만달러를 빌려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내가 너무 놀라서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서둘러 50 대만달러를 주고, 그 사람을 보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다시 와서는 바로 50 대만달러를 갚으셨다. 그러고는 고맙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콜릿과 땅콩을 계속 주셨다. 본인을 '판'이라고 소개를 한 이 아저씨는 타이난에 작은 여동생이 있다. 너희는 타이동 대학교 학생인 것 같다. 본인도 원래는 교사였다 등등 우리를 붙잡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친구와 함께 웃으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도망쳤다.


다행히 내가 만난 노숙자 판씨 아저씨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셨지만,

여자들끼리 밤늦게 버스터미널이나 역 근처를 다니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것 같다.

(여자 혼자 여행할 때는 해지면 숙소로 돌아가는 것 -> 필수임!)


야식을 먹으면서 친구는 나에게 대만 사람들이라고 다 착하지 않아. 나쁜 사람들도 많아. 어딜 가도 범죄는 있어! 특히 너는 여자고, 외국인이니까 더 조심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판 아저씨가 주신 초콜릿

그렇게 우리는 아저씨께 받은 땅콩과 초콜릿을 먹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의 마음만 감사히 받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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