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자오르 온천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구글맵에 따르면 자오르 온천은 오후 4시부터 영업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오후 5시 30분이 넘으면 대충 해가 지기 시작하고 저녁 6시쯤이면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빨리 가서 최대한 놀고, 해지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계획했다.
생각보다 뤼다오의 도로 사정은 좋았지만,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큼 내 자전거 실력이 좋지 못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안전이 제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뤼다오는 대부분 평지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며 자오르 온천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비가 온 직후였기 때문에 조금 습한 날씨였지만, 속도를 내어 바닷가를 달리니 상쾌한 바람이 두 뺨을 스쳤다.
컨딩만 해도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들 때문에 종종 무섭거나, 위험한 적도 있었는데
뤼다오는 정말 내 옆을 지나가는 차량이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평화롭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흥얼거리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잠시 멈춰서 정처 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설마... 지금 당장 비가 내리지는 않겠지.
비가 내릴까 봐 조금 두려웠지만, 일단은 기존 계획대로 자오르 온천을 향해 달리기로 했다.
엉뚱한 소리지만, 비가 내린다면 비를 맞으며 온천을 해도 낭만이 넘칠 것 같아서 내심 이슬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전 했다.
귀여운 염소 가족을 지나서, 약 40분 만에 드디어 자오르 온천에 도착했다.
걸어갔다면 1시간 이상 걸렸을 텐데, 역시 자전거를 빌리길 잘했다. 여행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다친 곳이 꽤 많았기 때문에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푹 지지고 싶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서둘러 자오르 온천에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만난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내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자, 굉장히 놀라워하셨다. 그럴 만도 한 게, 자오르 온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료 250 대만달러를 지불했다.
"근데, 너 수영모자는 있니?"
"네? 수영모자요? 꼭 있어야 하나요?"
"위생과 수질 보호를 위해서 수영모자는 꼭 착용해야 한단다."
그랬다. 이곳은 수영 모자가 꼭 필수인데 나는 수영 모자가 없었기에 아주머니께 수영 모자도 50 대만달러를 주고 따로 구입했다.
나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다. 온천이라고 하니 한국에서 자주 다니던 일반 목욕탕을 연상했다.
한국 목욕탕에서는 수건을 제공해 주니까, 이곳도 당연히 수건을 제공하겠지?라고... 정말 내 멋대로 생각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목욕탕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영장에 가까운 곳이었다.
수건이 필요했다. 그리고 슬리퍼도…
그냥 편하게 슬리퍼도 구입할까? 하고 아주머니께 가격을 여쭤보니 생각보다 비쌌다.
카운터의 아주머니께서도 그냥 편하게 맨발로 다녀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수건도 따로 구입하기 애매해서 그냥 티셔츠로 대충 닦기로 했다.
젖은 티셔츠 입고 자전거 타면 바닷바람에 물기가 마르지 않을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점점 자연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날씨는 비 오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물은 적당히 따뜻한 것이 휴식을 취하기 아주 좋았다.
사실 컨딩에서 오른손 약지와 검지를 다쳤는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한 채 대충 파스로 버텨야 했다. 그 이후로 오른손을 움직일 때마다 무척이나 뻐근했기에 따뜻한 물로 지지고 싶다..라고 생각만 해왔는데, 드디어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글 수 있었다.
자오르 온천은 약산성의 황산나트륨 온천이기 때문에, 타이베이의 베이터우 온천처럼 특유의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해저온천이니만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짠내가 조금 맡아질 뿐이었다.
사람들이 그나마 적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온천욕을 즐기니 그동안 뭉쳤던 근육들이 노근 노근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놀고 싶었지만 초보 자전거족에서 밤은 위험했다.
30분 정도 놀고, 온천을 떠나기로 했다. 아, 아쉽다.
카운터 아주머니께서도 “너 왜 이렇게 일찍 가니?”라고 물어보셔서 솔직하게 "자전거 타고 왔는데 밤에 위험할 것 같아서 서둘러 가요~"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께서는 "너무 아쉽다. 다음에 또 놀러 오렴."이라고 인사해 주셔서
나 역시 "네!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대답했다.
밤하늘 별도 보고, 온천수로 익힌 계란도 까먹고 싶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참을 달리다가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한참 동안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제 여행의 중반부에 다다르니, 시간 흐르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실 처음 뤼다오행 배를 탔을 때만 해도 “내가 두 번 다시 오나 봐라. 아, 그냥 즈번을 갈걸!" 하고 징징거렸는데, 뤼다오는 생각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잘 왔다.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
지난번 가오슝에서 구입한 <대만 아침식사 지도>라는 책을 보면 뤼다오에 땅콩 두부가 유명하다고 했는데, 그 땅콩 두부를 판매하는 식당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구글맵을 보고 평점이 높은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돼지고기볶음 정식을 주문했는데, 깔끔하고 아주 맛있었다. 오랜만에 쌀밥을 먹어서 그런지 아주 반가웠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뤼다오의 특산품인 해초찹쌀떡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평소에는 불면증이 있는 편이라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따뜻하게 온천욕을 해서 그런지 이 날은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