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여행 18일차.
뤼다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이동의 날. 뤼다오에서 타이동으로 그리고 또 다시 화롄으로 이동을 해야하는 날이라 신경써야 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아침 10시 40분 배를 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오늘의 아침밥은 해초단삥.
단삥은 얇은 계란과 밀가루 반죽을 부친 얇은 전병인데, 대만의 대표적인 아침메뉴 중 하나이다. 처음 대만에 왔을 때는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아침 식사를 잘 챙겨먹지 않는 편이었는데, 대만 여행이 길어지면서 대만 사람들이 먹는 아침 메뉴를 하나 둘 따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또 어떤 아침을 먹어볼까?"하며 메뉴를 고르는 것이 나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기왕 먹는 거면, 그 지역에서만 파는 것을 먹어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대부분은 가오슝에서 구입했던 <대만 아침식사 지도>책을 참고로 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뤼다오의 해초단삥을 알게되었고, 오늘의 아침메뉴는 해초단삥과 시원한 홍차 한 잔으로 결정되었다.
담백한 해초단삥에 달달하고 시원한 홍차 한 잔은 속도 편하고 부담없는 아침 메뉴라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순간 '뭐지? 한국인 차별인가?'라고도 생각했지만, 뭐 모든 대만 사람이 다 내 입맛에 맞을 수는 없는 법이니, 이 또한 여행의 작은 해프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사소하고 작은 일로 뤼다오의 즐거웠던 추억을 흐리는 것은 싫었다.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
체크아웃을 위해 내려왔을 때, 분명 조금 전까지는 거실에 계셨던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스킨스쿠버 업체를 함께하고 있어서, 그 사이에 스킨스쿠버 가게로 가신 모양이었다. 문자를 보내보니 사장님께서 그냥 열쇠만 반납하고 가면 된다고 하셨다. 정말 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편안했던 숙소를 나오니, 이번에는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어제 빌렸던 자전거를 반납하러 가야 하는데,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비를 맞기로 했다.
뤼다오에 와서 정말 강하게 크고 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보겠는가?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 대만에서는 하나하나 즐거운 추억이 되고 있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드디어 배 선착장으로 왔다.
이렇게 비로 시작했던 뤼다오는 마무리도 비로 끝을 맺게 되었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탑승 대기를 하면서 멀미약을 두 알 챙겨 먹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배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뤼다오 - 타이동 배를 타는 분들께 전하는 꿀팁�
배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무조건 가운데, 통로 쪽으로 앉으세요.
통로 쪽에 앉아야 최악의 상황에서 우웩 봉투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만에 가져온 이후, 거의 듣지 않았던 에어팟을 귓구멍에 꽂았다.
아, 어제는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어제는 남들이 우웩 하는 소리를 들으며 참…비위가 많이 상했다. 나름 비위가 강한 편이었지만, 1시간 동안 들리는 그 고통의 소리를 견디기에는 나의 정신력은 너무 나약했다. 그래서 나의 나약한(?) 정신력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신나는 음악을 크게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마음으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어느덧 타이동의 푸강항구에 돌아올 수 있었다.
똑같이 비바람을 뚫고 바다를 건넜지만, 오늘은 어제만큼 고생을 하지 않아서 인지,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어제는 “뤼다오에 다시 가면 그때는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또 배를 타고 뤼다오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웃음))
푸강항구에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다시 민박집에 들렸다.
민박집 거실 한켠에 보관하고 있던 내 캐리어를 챙겨서 허겁지겁 타이동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름 넉넉하게 시간 계산을 하고, 기차표를 예약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차 탑승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부셔진 캐리어 바퀴가 계속 말썽을 부렸다.
"아!!내가 꼭 이놈의 캐리어를 바꾸고 만다!!!"
사람은 초조하면 없던 힘도 솟아나나보다. 급한 마음에 그 무거운 캐리어를 번쩍 들고 플랫폼으로 미친듯이 달려서 간신히 기차에 탈 수 있었다. 좌석에 앉고서야 드디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맞다!!!!아바이!!아바이를 안 샀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깜빡한 게 뒤늦게 생각났다.
기차 타기 전에 꼭 패이난족의 전통음식인 아바이를 사서 기차에서 먹을 생각이었는데...분하다. 분해.
그렇게 먹고 싶었던, 원주민 전통음식을 못 먹고 타이동을 떠나다니..
다음에 다시 타이동에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꼭 아바이뿐만 아니라 더 많은 대만 원주민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배워보고 싶다.
꼭 다시 타이동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뤼다오에서 타이동으로,
타이동에서 또 다시 화롄으로, 기차는 빠르게 이동했다.
장시간 이동의 여파인지, 기차에서 기절하다시피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차창 밖 바닷가 풍경 대신 울창한 산림이 보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화롄에 도착했다.
사실 화롄은 내일 있을 타이루거 협곡 투어를 제외하고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내일 있을 타이루거 협곡 투어만 지나면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타이베이에 도착한다.
뭔가 마음이 복잡했다. 일단은 내일 있을 투어를 위해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었으나 내가 예약한 호스텔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아쉽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급한대로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대충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호스텔로 돌아와, 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대만 환도 여행 중인 대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친구들과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MBTI 이야기를 하다가, 호스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세탁기도 좀 돌리고,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며 나의 화롄 첫날을 마무리했다.
대만 환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롄에서 강도7.2의 강진이 일어났다.
화롄에서의 여행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날의 지진이 믿겨지지 않는다.
그저 강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화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찍은 사진 속 화롄 시내와 타이루거 협곡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데, 아직까지도 일부 타이루거 협곡 트래킹 코스는 통행금지라고 한다.
하루빨리 타이루거 협곡 트래킹 코스가 다시 개방되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