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찬란한 도피 42. 친구들과 타이루거 협곡 투어(1)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오늘은 여행 중반부를 구성하고 있는 타이동 - 화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타이루거 협곡 투어를 하는 날이다. (*현재 타이루거 협곡은 2024년 4월 3일에 발생했던 지진으로 인해 일부 구간이 여전히 폐쇄 중이고, 아직도 복구 중이라고 한다. )


여행 초반에 있었던 아리산 투어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소그룹 투어를 하지 않았는데, 혼자 타이루거 협곡을 여행하기에는 교통편이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결국 오랜만에 다시 소그룹투어 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 8시 30분까지 숙소 앞으로 픽업 차량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픽업 차량이 오기 전, 서둘러 아침밥을 사러 나갔다. 숙소 근처에 있는 간판 없는 로컬 가게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요티아오를 잔뜩 구매하길래 나도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화롄의 어느 아침식사 가게
갓 튀긴 요티아오와 달콤하고 따뜻한 또우장


예전에는 이 또우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도 두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또우장은 맛있다는 생각보다는 '비리다.'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차가운 또우장은 어찌어찌 마실 수 있었지만, 따뜻한 또우장은 주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또우장이 너무 좋다. 빈 속에 마셔도 자극적이지 않고, 심지어 든든하기까지 하니 정말 좋은 아침 식사라고 생각한다. 왜 진즉에 이 또우장의 매력을 몰랐을까? 우스운 이야기지만 왠지 이제야 어른이 된 기분이다.


요티아오 역시 갓 튀겨서 바삭하고, 고소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찹쌀 꽈배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그 담백함이나 바삭함은 차원이 달랐다. 한국의 찹쌀 꽈배기가 간식이라면 중국의 요티아오는 또우장과 함께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침부터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오늘 하루가 굉장히 즐거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기사 아저씨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차에 탑승했다.

아저씨께서는 오늘 나를 포함하여 총 6명이 함께 투어를 할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혹은 조금 더 어린) 나이의 사람들이었다. 서로 간단하게 인사는 나눴지만, 그 외에 다른 대화는 없었다. 숨 막힐 듯한 어색함 속에서 각자 핸드폰만 보다가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청수단애에 도착했다.


청수단애


날씨는 조금 흐려서 아쉬웠지만, 덥지 않아서 여행하기 딱 좋았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예쁜 파란 바다가 마음에 들어서 혼자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었는데 같은 투어팀의 남자아이 한 명이 다가와 사진 좀 찍어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아, 또 내가 누구냐… 사진 하면 또 한국인이지.


“시선은 이쪽으로, 이렇게, 저렇게 서라”라며 사진작가로 빙의된 듯,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결과물을 보고, 남자아이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갑자기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했다.

"누나,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해요?"

알고 보니 그는 한국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찍어준 내 사진


그렇게 그 중국인 친구를 시작으로 파워 핵인싸인 홍콩오빠, 일본에서 유학 중이라는 윈난 성 출신 친구,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다는 쓰촨 친구, 내성적인 홍콩 여자아이까지 같은 투어팀 친구들과 모두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 분명 청수단애 올 때까지는 되게 어색하지 않았니?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각자의 휴대전화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께서도 놀랄 정도로 우리는 순식간에 친해졌다. 우리들은 차 안에서도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며, 두 번째 투어 장소이자 타이루거협곡 투어의 본격적인 시작점인 사카탕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는 “마침 6명이 다 친해졌으니까 따로 다니지 말고, 너희들 다 같이 다니면 좋겠다.”라고 하시며 가장 연장자인 홍콩 오빠를 잘 대장으로 임명하셨다.



타이루거 트래킹 코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퇴각로 확보를 위해 타이루거 협곡에 동서 횡단도로를 만들면서 이루어진 길이라고 한다. 군인, 죄수, 원주민 등을 동원하며 빠르게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굉장히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잔도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고 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우리는 홍콩 오빠의 주도 하에 다 같이 사카탕 트래킹을 시작하였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걷다가 예쁜 풍경을 보면 돌아가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사카탕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절벽들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았다. 우리는 그 아찔한 절벽을 구경하다가, 그 밑에 펼쳐진 신비로운 계곡물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와! 너무 아름다워!"


그동안 대만 여행을 하며 바다는 참 많이 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은 처음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이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역시 자연은 위대했다.


나는 원래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혼자 여행을 며칠씩 하다 보니 아주 가끔 ‘대화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여행은 이 투어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떠들며 트래킹을 하니 무척 즐거웠다.


사람들이 쌓아 올린 돌탑들. 너무 귀엽다. 다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그리고 옌즈커우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이곳은 낙석 위험 지대라서 안전모를 써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투어 할 당시만 해도 안전모 착용이 강제는 아니었지만, 아저씨에서 낙석에 맞아서 숨지거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옌즈커우 입구
세월과 계곡물이 만들어낸 절벽의 신비로운 단층


옌즈커우는 절벽 중간중간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곳에 제비들이 둥지를 만들어서 이곳의 이름이 연자구(燕子口, 옌즈커우)가 되었다고 한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옌즈커우 주변에는 주차를 할 수 없으니 한 바퀴 돌아서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셨다.


사카탕도 멋있었지만, 옌즈커우도 또 다른 멋이 있었다.




옌즈커우는 쓰촨 성에서 온 여자 아이와 함께 걸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 아이도 대만에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해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친구, 대화를 할수록 범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나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한국어도 잘했다.


"언니, 언니는 한국 드라마 뭐 뭐 좋아해요?"

"언니는 한국 연예인 누구 좋아해요?"


사실 나는 드라마도 연예인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한국드라마를 추천해 주었다.

외국인에게 한국 드라마를 추천받는 한국인이라니,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대화하는 내내 깔깔 웃어댔다.




옌즈커우 끝자락에 도착하자 작은 휴게소가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친구들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해줬지만, 제대로 한국을 소개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곳 타이루거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은 것이 궁금했는지,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나나야, 여긴 왜 이렇게 한국인이 많아?”

“타이루거는 한국인들의 대만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야. 예전에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후부터 사람들이 선호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어”

“그런데 넌 왜 한국인들과 같이 여행을 안 해?”

“글쎄? 난 한국인이 아닌가 보지.”


뭐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서로 살고 있는 나라의 물가, 급여 등등 경제적인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정치, 역사적인 이야기까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만난 대만 친구들, 다른 외국인 친구들 모두 너무 멋진 사람들이지만 이번에 만난 친구들은 특히나 더 멋진 사람들이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이라, 그들이 참 부러웠다.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인데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그저 부러워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그 친구들에게 멋지고, 배울 점이 많은 한국인 친구로 기억되고 싶다.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 역시 더 열심히 살아가야지.






(2)에서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