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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43. 친구들과 타이루거 협곡 투어(2)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텐샹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사와 연계되어 있는 뷔페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후식인 아이스크림까지 열심히 가져다 먹었다.



가이드 아저씨께서 약간의 자유시간을 주셔서, 여행 멤버들은 각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 역시 식당가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하지만 식당 주변은 온통 기념품샵이나 식당들 뿐이라 조금 아쉬웠다.

결국 나는 나만의 모험을 하겠다며 좀 더 먼 곳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상하이와 윈난에서 온 친구 두 명이 "누나, 저희가 에스코트할게요."라며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톈상근처에 있는 작은 사찰까지 걸아가 보기로 했다.


낮잠 자는 강아지들


빨간 다리를 건너 사찰로 향했다.

텐샹 식당가에서 바라본 빨간 다리는 아주 근사했는데, 정작 사찰에 와보니 별로 볼 게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아서 5분만이 구경을 끝내버렸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산책길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텐샹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운치 있는 작은 마을, 텐샹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인데, 외국인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특히 그들 나라의 문화, 음식, 지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고 그것을 토대로 대화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대만 친구들과는 지난번 가오슝에서 구입한 ‘대만 아침식사 지도’가 대화의 아주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는 각자 사는 지역 특산품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되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왔어.”

“와! 거기는 어떤 음식이 유명해?”


이런 식으로 음식(특산품)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져서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나만의 작은 팁이랄까?(물론 한국에서 가져온 사탕이나 초콜릿같이 간식거리가 있으면 그런 작은 선물을 주면서 친해져도 좋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고, 두려워하다 보니, 사람들을 사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상대방의 위치에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친구를 사귀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욱 친절하게 대했을 텐데…

그랬다면 이전 회사에서도 뭔가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가이드 아저씨가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승합차에 올라 각자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지우취동에 도착했다.


지우취동의 풍경들
저 멀리 보이는 것 장춘사.


지우취동 끝자락, 저 멀리 장춘사가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께서 장춘사는 과거 타이루거 동서 횡단 도로를 건설하며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위해 세워진 사당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시간을 넉넉히 줄 테니 장춘사까지 다 같이 보고 오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홍콩 오빠의 인솔하에 다 같이 장춘사까지 걸어갔다



장춘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의아한 것을 발견했다. 불상 앞에 한국인 분들이 천 원을 잔뜩 놓고 가신 것이다. 심지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백 원짜리 동전을 곱게 올려놓은 것이 무척 귀여웠다.


“나나야, 한국인들은 여기에 한국돈과 라이터를 왜 놓고 간 거야?”라고 홍콩 오빠가 물어봤지만, 나도 잘 모르겠어서 “어.. 글쎄? 왤까?”라고 대답해 버렸다.

홍콩 오빠는 그런 내 모습이 웃기다는 듯 깔깔 웃더니, “나나야, 너 어디 가서 절대 한국인이라고 하지 마. 내가 볼 때 넌 완전 대만 사람이야.”라며 놀려댔다.



장춘사를 다 보고 돌아와서 다시 가이드 아저씨를 기다렸다.


친구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한국인들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나나야, 아까 한국인들이 다 저기에서 기념촬영을 하던데, 너도 찍어줄게! 너의 정체성을 잊지 마.”라며

또다시 나를 놀려댔다.


친구들이 챙겨준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렇게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을 때, 가이드 아저씨께서 돌아오셨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지금은 지진의 여파로 무너져버린 타이루거국가공원 동서횡단도로 입구 표지석을 지나갔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다시 타이루거국가공원 여행이 가능하길 바라본다.)


타이루거 국가공원 동서횡단도로 입구 표지석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쯤, 아저씨께서 "얘들아, 도착했다!"라며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몽사몽, 잠에서 일어나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리도록 푸른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와!"


마지막 목적지는 치싱탄해변이었다.

치싱탄해변은 푸른 태평양 바다와 회색빛 자갈밭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북두칠성이 잘 보이는 곳이라서 치싱탄(七星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곳은 수심이 깊고, 물살도 세서 수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주변을 산책하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거친 날씨에도 체험학습을 온 것 같은 어린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탑을 쌓고 있었다.

진지한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상하이와 윈난에서 온 친구들
쓰촨 친구가 찍어준 사진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번에는 쓰촨에서 온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이번 투어 내내 쓰촨 친구가 사진을 참 많이 찍어주었다.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다는 그녀는 이번 대만 여행을 마치면, 한국으로 가서 강릉에 간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슨 한국 관광 홍보 대사라도 된 기분으로 열심히 강릉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들과 관광지를 열심히 추천해 주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그녀는 현재 한국에서 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녀의 멋진 한국 생활을 응원한다.)




드디어, 준비되었던 투어 일정을 모두 마무리되었다.


가이드 아저씨께서 “나나야, 넌 동대문 야시장에 갈래? 아니면 숙소로 바로 갈래?”하고 물어보셨다. 살짝 피곤했지만, 핑동 친구의 추천이 있었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야시장을 가는 것은 처음이라 동대문 야시장에 가겠다고 답했다.


결국 홍콩에서 온 여자아이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야시장을 선택했다. 아쉽지만 그렇게 홍콩 아이와는 작별을 하고, 남은 사람들은 다 같이 동대문 야시장으로 향했다.


화롄 동대문 야시장


타이동에서 만났던 핑동 친구가

“화롄에 가면 꼭 동대문 야시장을 가봐. 거기 진짜 크고, 맛있는 것도 많이 팔아!”라고 했는데,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금 일찍 간 탓인지 문을 열은 곳은 별로 없었다.

(일반적으로 저녁 6시 이후에 문을 열음)


일단 가게들이 영업을 시작할 때까지 근처를 배회하다가 상해 친구의 추천으로 다 같이 꽌차이판을 먹기로 했다. 나중에 핑동친구에게 이야기해 줬는데, 맛있는 거 잘 먹었다며 칭찬해 줬다.




꽌차이판은 도톰한 빵의 가운데를 파고, 그 안에 갖은 고기와 야채를 넣은 후 뚜껑(?)을 덮고 튀긴 음식인데, 정말 맛있었다.


내가 주문한 맛은 이번에도 흑추추맛.

샹창도 그렇고, 총요삥도 그렇고, 대부분의 길거리 음식은 흑후추맛을 고르면 실패가 없다. 역시 이번에 주문한 꽌차이판도 매콤한 후추향이 나면서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꽌차이판을 다 먹은 후, 우리가 고른 후식은 띠과치우(고구마볼).


사실은 내가 띠과치우를 한 번도 안 먹어봤다고 하니, 다들 나를 위해 띠과치우 가게를 찾아주었다. 꽌차이판을 먹어서 배가 많이 불렀기에 친구들에게 “다들, 나 좀 도와서 2개씩 먹어줘!”라고 했다.

갓 튀긴 띠과치우는 고구마 특유의 달달한 맛이 은은하게 돌아서 순식간에 몇 개씩 집어먹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는데도 따뜻하고 달달한 띠과치우는 정말 맛있었다.


아마 좋은 사람들과 같이 먹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며, 홍콩오빠가 차 한잔씩 더 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내겠다며, 20대들은 돈 쓰지 말라고 했다.

음? 난 20대 아닌데, 그래도 오빠가 한턱낸다고 하니 뻔뻔하게 20대인 척을 하기로 했다.




이번 타이루거 협곡 투어를 하며 나는 그동안 참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때는 중국어도 영어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세상에는 참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만을 여행하며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내게 베풀어준 친절함과 다정한 말 한마디,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내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나 역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주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퇴사를 하고 대만 여행을 결심했을 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대만 여행의 후반부를 달려가는 지금, 조금씩 그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이제 내일이면 대만 환도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타이베이로 간다.



친구들과 인스타그램과 라인ID를 공유하며 다음에는 한국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들의 앞날이 늘 찬란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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