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지하철을 타고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으로 향하던 중,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중정기념당에서 내려버렸다.
'충동적으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지도에 따르면, 숙소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산책 삼아 걸으면 충분해 보였다.
가는 길에 저녁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지하철 역을 나와 곧장 중정기념당으로 향했다.
중정기념당은 '장개석 기념관'으로도 불린다.
장개석(장제쓰)은 중국 국공내전에서 밀려 대만으로 이전한 뒤, 중화민국의 총통으로 오랜 세월 집권한 인물이다.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금의 대만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역사란 언제나 복잡하다.
우리가 배운 것,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의 입장은 다르고, 기록은 늘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쓰이니까......
나에게 장개석은 그보다도,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만 고궁박물원'을 만든 인물로 기억이 남는다. 그의 업적과 과오를 논하기 전에, 지금 이 기념당이 대만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꾸고 녹여낸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넓은 자유광장, 저 끝에 파란 기와의 중정기념당이 보였다.
그때였다.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서기 시작했고, 국기 게양대 쪽으로 군인 두 명이 힘차게 걸어왔다.
국기 하향식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발걸음을 돌려 그들을 따라갔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배경으로 대만의 국가가 광장에 울려 퍼졌고, 근위병들은 정확한 동작으로 국기를 접어들고 물러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강렬한 장면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순식간에 날씨가 선선해졌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중정기념당을 나와 저녁빛이 깃든 거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석양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총통부, 228 평화공원의 조용한 숲길을 지나갔다.
중국에서 살던 시절, 공원에서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했는데, 대만에서는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러한 작고 사소한 차이가 도시의 결을 만든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
근처에 위치한 '삼다옥'이라는 회덮밥 가게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따뜻한 미소국에 생선이 들어있었고 비주얼도 괜찮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든든히 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가게 옆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무엇을 파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줄이 있다는 것은 곧 '맛집'이라는 뜻. 나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줄에 자연스레 섰다. 알고 보니 SNS에서 종종 봤던 그 '카리 도넛'이었다.
갓 튀긴 따뜻한 도넛을 하나 사서, 크게 베어 물었다.
분유맛이 나는 달달한 가루가 입안에서 퍼졌고, 달콤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벼운 산책 삼아 골목길을 조금 걸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밤거리, 바람은 시원했고, 나는 하루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조용히 밤 길을 걸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화롄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경보 문자였다.
깜짝 놀라, 여전히 화롄을 여행 중인 친구들에게 서둘러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대만은 환태평양 조산대 위에 놓인 나라이다. 여행하는 내내 그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비로소 실감하게 된 밤이었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늘 작고, 약한 존재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