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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46. 온천마을, 베이터우①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대만 환도 여행 21일 차


이른 아침.

수영복과 수건, 샤워용품만 가볍게 가방에 챙겨 넣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운 채, 밖으로 나왔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는 무료로 조식이 제공됐지만, 맛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래도 친절한 직원들과 깨끗한 객실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 타이베이에 다시 온다면 또 이곳에 머물고 싶다.




신베이터우로 가는 길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 레드라인을 타고 베이터우 온천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은 무척 간단하다. 베이터우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신베이터우'행 열차로 갈아타면 된다.



신베이터우역에 내리자마자 귀여운 온천마을 조형물이 나를 반겨줬다.

'누가 온천마을 아니랄까 봐. 귀엽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의 목적은 온천욕.

그런데 막상 어디로 갈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나는 늘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대문자 J 같은 사람이었는데, 점점 P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여행은 늘 변동의 연속이기 때문일까?

'에잇, 모르겠다. 걷다 보면 마음에 드는 곳이 있겠지."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북적이던 타이베이의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신베이터우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

초록으로 가득한 숲,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 순간, 내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넓은 집, 멋진 차, 안정적인 수입, 사회적 지위......

그런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런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없는 것을 붙잡고 속상해하는 게 과연 행복일까?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 아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소중한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나무 사이를 지나는 사람, 지저귀는 새, 친절한 대만 사람들의 미소.

그리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행복은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였다.




유서 깊은 온천장, 롱나이탕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오래돼 보이는 한 건물을 발견했다.

롱나이탕(瀧乃湯). 이 지역에서도 꽤 유서 깊은 온천장이라고 했다. 뤼다오 여행에서 대중탕을 이용해 봤으니, 이번에는 프라이빗룸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인실만 운영 중 이라 혼자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몇 번이나 부탁해 봤지만, 규정성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스프링시티 리조트'를 발견했다.

1인 프라이빗룸이 가능하고, 식사까지 제공되는 패키지가 있다. 바로 예약했다.




지열곡, 신비의 온천



리조트 측에서 제공하는 식사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근처에 있는 지열곡(地熱谷)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작은 개울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베이터우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열곡이 나온다.

지열곡(地熱谷), 얼마나 뜨거우면 이름에 '열(熱)'자가 들어갈까?

지열곡 입구에는 온천수가 나오는 샘이 있어서 시험 삼아 손을 담가보았다.

살짝 데일 듯, 따뜻한 물.

며칠 전 컨딩에서 다친 손가락의 통증이 순간 사라지는 듯했다.


근처 굿즈숍 겸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가게 안에는 대만 특유의 아기자기한 굿즈들이 가득했다. 온천 계란 모양의 입욕제가 귀여워서 눈길이 갔지만, 꾹 참았다.





진한 에메랄드빛 물 위에서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지열곡 근처에 있으니 마치 불가마 찜질방에 들어간 것 같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열곡의 온천수는 섭씨 90도까지 올라가며, 과거에는 이곳에서 계란을 삶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안전과 수질 문제로 금지되었지만, 옥빛 온천수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시며 지열곡을 한 바퀴 산책했다.

뜨겁고 땀이 줄줄 흘렀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예약한 스프링시티 리조트는 지열곡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신베이터우역 앞에서 스프링시티 리조트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는데, 나는 급하게 예약한 거라,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햇살이 내려앉은 골목을 따라,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걸었다.

온천을 향한 발걸음도, 내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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