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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47. 온천마을, 베이터우②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온천에서의 작은 사치


프런트에 바우처를 보여주자, 직원이 웃으며 물었다.

"야외 대중탕과 프라이빗룸 중 어느 쪽을 원하시나요?"

나는 망설임 없이 1인 프라이빗룸을 선택했다.


11시 30분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 욕탕보다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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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을 이용할 때는 이 티켓들을 보여주면 된다.


직원이 안내에 따라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레이디"



훤칠하게 생긴 직원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반겨줬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레이디'라는 호칭에 너무 놀라버렸다.

내가 온 곳이 온천장인지, 집사 카페인지 순간 헷갈릴 정도였다.


혼자 왔다고 하자, 직원들은 나에게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 두 사람 자리로 안내해 줬고,

두 가지 코스 중 하나를 골라달라 했다.


메뉴를 살펴보니 A코스와 B코스의 구성이 조금 다를 뿐, 메뉴는 동일하게 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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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한 구성의 A메뉴를 선택했다.

A메뉴는 샐러드와 회덮밥, 미소장국, 과일, 디저트로 구성된 담백하고 정갈한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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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에서 살 때는,

이런 리조트나 호텔 식당에서 식사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 누군가 와서 바로 물을 채워주는 이 낯선 분위기.

나는 무의식 중에 살짝 위축되고 말았다.


황송할 정도로 친절한 서비스에 몸 둘 바를 몰라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자,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만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뭐든 경험해 봐야지.'

아직은 이런 공간이 조금 어색하지만,

앞으로는 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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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전반적으로 모두 깔끔하고, 무난했다.

특히 회덮밥의 담음새부터 정성이 느껴졌다. 식사를 하며, 정말 '대접받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배부르게 먹고, 1층으로 내려오자, 조금 전 봤던 직원이 나를 기억해 주며 다가왔다.

"식사는 잘하셨어요?"

그 말이 괜스레 따뜻하게 들렸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정말 맛있었어요."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프라이빗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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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룸은 넓지도, 좁지도 않았다. 혼자 사용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직원은 온천수와 찬물의 밸런스를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들뜬 마음에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저 온천수만 콸콸 틀어버렸다.

결과는 예상대로.


너무 뜨거워서 손을 집어넣기도 어려웠다.

"와, 진짜 화상 입는 줄 알았네."


다행히 금세 물이 받아졌고, 욕조 밖에서 간단하게 씻은 뒤, 조심스럽게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속에서 몸과 마음이 천천히 풀렸다.


이번 여행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문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늘 굳어 있던 어깨와 목이 물속에서 노곤하게 풀려갔다.


예약했던 1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흘러갔다.

'1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용 시간이 끝나간다는 직원의 안내 전화에 부랴부랴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는 다시 베이터우 골목으로 나섰다.

고운 대접을 받은 듯한 이 리조트를 뒤로 하고, 햇빛 아래로 걷는 길.

기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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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이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엄마, 여기 진짜 좋아요. 우리 늙기 전에 대만에 이민 가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나 가, 나는 안 가."

그 말에 나 혼자 낄낄 웃으며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이곳, 베이터우는 참 이상한 매력을 가진 동네다.

화려하고 분주한 타이베이와는 전혀 다른 결.

아늑하고 조용하고, 마음을 조용히 내려앉은 느낌.


언젠가 노후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다면,

정말 이곳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따뜻했고,

그만큼 정이 갔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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