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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Oct 05. 2020

왜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가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15)

모든 유통회사가 그렇듯 홈쇼핑도 실적관리를 위해 판매의 호부진 사유를 분석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어떤 상품이 잘 팔렸으면 잘 팔린 대로, 안 팔렸으면 안 팔린 대로 담당 PD에게 특별한 사유가 있었는지 물어보게 된다.

특이한 것은 그럴 때마다 PD들이 비슷한 답변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이 상품이 왜 이렇게 안나갔을까?"

"팀장님, 오늘 날씨를 보세요. 거리에 차가 어마 무지 막히고 있다는 뉴스까지 있잖아요. 화장한 날이니 집에 있는 고객이 별로 없었던 거죠."


반면 판매 실적이 좋을 때는 보통 이런 식의 대답을 한다.

"MD, 호스트와 회의를 여러 번 하면서 전략을 잡았구요,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여 노출한 것이 고객에게 어필이 잘 된 것 같아요."


무언가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처음부터 책임 추궁의 목적은 아니었기에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평소 성실하게 일하던 PD도 저런 때만 자기중심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는 것뿐일까.




'자기중심적 편향'이란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함으로써 일어나는 인지적 왜곡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테면 남의 일은 쉬워 보이고 자신의 일은 힘들게 느껴지는 것, 남의 것은 좋아 보이고 자신의 것은 나빠 보이는 현상들이 해당될 수 있다.

본인이 군 복무한 곳이 제일 힘들었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자신이 다니는 회사 또는 부서의 일이 제일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투자를 해서 수익을 거두면 본인의 실력이 좋은 것이고, 손실이 나면 외부 환경(시장)이 안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 또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환경적 요인으로 돌리는 반면, 자신의 긍정적인 행동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내부적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본인이 가질 수 있는 정보와 관련이 깊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한데,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은 알기 힘들어도 자신의 생각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많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타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적 차이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그런 생각은 자신의 영향력이나 능력들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왜 PD들이 판매 부진 사유를 외부에서 찾는지 이해가 된다. 본인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잘 알고 있으니 결과가 좋을 때의 이유는 댈 수 있지만, 결과가 안 좋았을 때의 이유는 내부에서 금방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물론 이것은 인지적 왜곡이 존재하는 1차적인 반응을 얘기하는 것뿐이다. 실제로는 면밀히 원인을 분석하여 개선하는 업무를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편향'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닐까 한다.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면서 소통이 불가한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 말이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여기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유아기의 인지적인 특징임을 감안하면 이런 사람들은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람둥이로 소문난 사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애인을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날 수가 있죠? 당신은 양심도 없나요?"
상상을 초월한 바람둥이 남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어제는 그녀를 사랑했고, 오늘은 이 여자를 사랑했을 뿐인데요. 뭐가 잘못됐죠?"


우연히 라디오에서 접한 바람둥이의 심리 얘기에 매우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사연 속의 그 남자는 자신의 감정만 소중했을 뿐, 연인의 입장 따위는 개나 줘버렸던 것이다. 애초에 사랑에 대한 개념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일 테지만, 한편으로 제법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껏 바람둥이는 본인의 잘못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말의 죄의식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저 사연대로라면 자신이 한 것은 사랑이었으므로 죄의식 따위는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토록 뻔뻔할 수 있는 이유가 정말로 본인의 잘못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았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기적인 편향이 극도로 발휘되어 미성숙한 채로 살아가는 '겉모습만 어른'이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로맨스와 불륜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로맨스(romance) :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또는 연애 사건

불륜(不倫) :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로맨스'라는 단어에는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의 의미가 은은하게 깔려있다. 서양에서 온 말인 만큼 무언가 개방적이고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불륜'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개념은 없이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깔려있다. 한자어가 주는 특유의 규범적인 느낌마저 고려한다면 고루한 단어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단어가 주는 이미지로만 놓고 보면 확실히 불륜보다 로맨스라는 단어가 멋지게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륜'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도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도리만 지킨다면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순간의 도리를 지키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초래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러한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로맨스를 불륜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기중심적인 편향을 죽이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불륜이라는 내용물을 로맨스라는 포장지로 감싸 봐야 오래갈 수 없다. 포장지는 언젠가 풀어헤쳐져 지기 마련인 탓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도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Love is not love which alters when it
alteration finds."  

변화가 생길 때 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로다.


그러니까 어제 그녀를 사랑했으면 오늘도 그녀를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리를 지키지 않는 로맨스는 로맨스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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