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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PD Oct 12. 2020

어머니는 갈비탕이 좋다고 하셨어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16)

"얘, 어디 갈비탕 맛있게 하는 집 없니?"


얼마 전부터 어머니께서는 갈비탕을 드시고 싶어 하셨다.

그전에 몇 군데 모시고 갔었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 식당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때 불현듯 회사 근처의 한 갈비탕집이 생각났다. 한 때는 맛집이라고 회사 직원들도 많이 가던 식당이었다.

지금껏 그곳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언젠가부터 처음의 그 맛이 아니라는 불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땅한 곳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그 식당에 갔는데, 의외로 어머니께서는 맛있다고 흡족해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집이 처음과 맛이 달라진 건데...'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 식당의 예전 맛을 모르는 어머니께서는 분명 최근 다녔던 식당과의 맛 비교를 하고 계실 것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하더라도 저마다의 기준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졌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란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효과는 우리가 쇼핑을 할 때나 물건을 살 때 숱하게 겪게 되는 현상이다.

어떤 상품이 세일을 하면 우리는 보통 가격표의 원래 가격을 보게 된다. 그 가격이 현재 세일가와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상품은 매우 싸게 느껴지고 구매 욕구도 덩달아 높아지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홈쇼핑 방송 중 가장 고객의 반응이 뜨거운 방송은 대개 SALE 방송이고,  PD들은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세일 표현을 고민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한다. 직관적이고 명확한 세일 표현은 당연히 매출에도 많은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기존가 대비 00% 할인'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콘텐츠는 분명 해당 시간 시청 고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으리라.


편의점 음료 진열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1+1' 행사도 앵커링 효과를 겨냥한 대표적인 판매 전략이다. 1개의 가격을 뻔히 알고 있는데 하나를 더 준다면 누구라도 반값에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원래의 가격이 제대로 책정된 가격인지 의구심을 품어볼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점을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제 가격에 샀을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그 사람보다는 자신이 이득을 본다는 만족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앵커링 효과에는 사실 위험한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인이 어떤 회사의 주가가 많이 싸니까 사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보통 주가가 싸다는 얘기를 하려면 그 회사의 미래 가치나 현재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 게 이치에 맞다. 하지만 그가 싸다고 생각한 근거는 그저 '많이 떨어져서'이다. 1만원을 하던 주가가 5천원이 됐으니 얼마나 저렴하냐는 식이다.


그러나 그 회사의 적정가치가 5천원이라면 사실 1만원은 거품 가격이었던 것인데, 그 지인은 거품가를 기준점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결국 그 회사의 주가는 5천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떨어졌고, 그도 제법 손실을 입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보통 어떤 판단을 할 때 비교 대상이 될만한 기준을 정하게 되는 까닭은 그 편이 결정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해놓은 기준이 어떤 근거 없이 설정되었을 때이다.

심지어 그 막연한 기준으로 판단한 내용을 타인에게 전파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는데, 이는 매우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사람 승진하더니 사람이 변했어’

‘걔가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류의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하지만 누가 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사람이 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전보다 현실적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방식이 좀 더 노련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 이전의 모습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친절한 사람은 늘 친절해야 하고, 성실한 사람은 늘 성실해야 함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평생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변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갈비탕 맛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맛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고, 맛집인지 아닌지는 ‘내가’ 직접 가서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갈비탕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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