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이 읽는 이솝우화 (8)
사람들이 처음으로 낙타를 보았을 때 그 엄청난 크기에 겁을 먹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낙타가 점잖은 짐승임을 알고 용기를 내어 가까이 갔습니다.
점차 사람들은 낙타가 성낼 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낙타를 업신여겨 그 위에 고삐를 얹고 아이들로 하여금 몰게 하였습니다.
점잖다는 것이 나쁜 뜻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만함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드는 탓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내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다.
만만히 보이는 사람은 대체로 거절을 못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거절을 못하니까 상대의 요구에 그대로 순응하게 되고 그것이 만만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만다.
'거절 잘하는 법'을 다룬 책들이나 콘텐츠를 쉽게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런 일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들은 직장생활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싫다는 의사 표시를 못하니까 남의 업무를 떠안는 일도 자주 벌어지고, 거꾸로 성과가 나올만한 일은 빼앗기는 상황마저 생기곤 한다.
타인과의 충돌을 염려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선택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선의는 무시된 채 '만만한 사람'이라는 오명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절을 쉽게 할 수 있는 성격으로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타고난 기질은 골프 스윙처럼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만만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 '거절'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거절'의 행위에 집중하면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냐 마냐만 초점이 되어버린다. 자칫 제안을 거부하면 충돌, 수용하면 평화라는 이분법에 빠질 수 있다.
이럴 때는 거절이 아니라 그냥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정신없는 와중에 상대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바빠서 해줄 수가 없다'라고 얘기하면 된다.
쉬고 싶은데 누군가 귀찮게 하면 '지금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라고 말하면 된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을 뿐이니까.
단지 그것뿐이다. 굳이 '싫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상대와의 충돌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 상황과 감정에 충실히 귀를 기울인 다음 그것을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친구사이나 연인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이들의 관계는 건강하다.
낙타도 사람들이 귀찮게 할 때 어떤 형태로든 표현을 했으면 만만히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 '표현'을 '성질부리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과 성질을 부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걱정되는 사람은 거절하는 법이 따로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분명하고 매너 있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