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이 읽는 이솝우화 (10)
장미 곁에 아마란트*가 자랐습니다.
"참 곱기도 하지."
하고 아마란트가 장미에게 말했습니다.
"신이 보기에도 또 사람이 보기에도 얼마나 탐날까! 아름다움과 향기를 축하해요."
"그러나 내 목숨은 짧아요."
하고 장미가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자르지 않더라도 나는 시들고 말지요. 그런데 당신은 계속 꽃을 피우고 또 항시 지금처럼 싱싱하지요."
*시들거나 지는 법이 없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꽃
장미를 보면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잠시 마음을 뺏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시기와 질투를 당하는 대명사로 쓰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마란트의 부러움 가득한 찬사에 장미의 대답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내 목숨은 짧아요."
장미도 자신이 아름다움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찰나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겠지.
장미는 꽃을 한껏 피울 수 있는 기간이 불과 몇 주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을 것이다.
조금 덜 아름다워도 영원히 싱싱하고 시들지 않는 꽃이기를 소망했을지도 모른다.
흔히 하는 얘기지만 인간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타인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그의 이면에 숨어있는 고뇌나 짧은 전성기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누가 초고속 승진을 한다고 하면 그 겉모습만 부러워하지 남보다 더 빨리 퇴직하게 되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식이다.
타인의 성공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리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내 것에 조금 더 집중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남의 외모나 재능을 부러워하고 시기해 봐야 내게 도움 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가진 비교우위를 파악하고 그것을 개발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장미를 부러워하는 아마란트가 될 필요도 없고, 아마란트를 부러워하는 장미가 될 필요도 없다.
장미와 아마란트가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같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름다운 장미가 될 것인가, 시들지 않는 아마란트가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둘 다 사랑스러운 꽃이라는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