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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입니다,

by 밤비 Mar 31. 2025



저는 계획적인 사람입니다. 업무 시작 전 사전준비 작업부터 철저히 계획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곧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느린 사람일 겁니다. 때로는 그런 제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완벽에 완벽을 기할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모자란 상태로 임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쉬운 방법, 간편한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도 한 계단씩 정석을 따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삶이라는 것이 원체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기에, 오직 하나의 계획만을 세우기보다는 예상 가능한 시뮬레이션에 따른 여러 개의 보조 계획들도 마련합니다. 만약을 대비한 계획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게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한 대로 맞아 떨어질 때의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죠.

 

 

더불어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같은 시각에 잠이 듭니다. 꾸준히, 잘 관리된 체력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같은 시간, 정해진 거리를 매일 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평균 4분 초반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체중 관리도 신경씁니다. 체중을 감량하고 나니 매사에 몸이 가볍고 재빨라졌습니다. 이 모든 자기관리 덕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루틴은 곧 저를 말해줍니다.

 

 

저는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꼭 해내고 맙니다. 지금까지 스스로와 한 약속 중에 지키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목표한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끈기이기도 하고, 목표를 완수했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에 대한 목마름이기도 하고, 또 사소한 성공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저라는 사람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볍게 약속하지 않고, 아무 목표나 선택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 만큼의 목표여야만 끝까지 해내고 싶어지니까요. 좋은 목표를 선택하는 것은 곧 성공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인내심도 많습니다. 운동이든, 공부든, 미술이든 해 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그 어떤 것도 단 숨에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잘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촘촘히 채웁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보는 성취감은 훨씬 더 달콤합니다. 늘어지는 시간들 사이로 지루함이 끼어들 때면 지난 성공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다시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워커홀릭 같나요? 너무 답답한 사람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저 이래 뵈도 워라벨을 잘 지킵니다. 하나의 일정이 끝나고 나면 다음 일정까지 일정 기간 휴식기를 확보합니다. 제대로 쉴 수 있어야만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쉬는 동안에도 저만의 루틴만큼은 놓지 않고 잘 지키는데요, 그러니까 저에게 휴식기라는 건 숨 한 번 크게 고르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 같은 겁니다. 휴식 기간을 정해두지는 않습니다. 가장 짧았던 건 일주일, 가장 길었던 건 3개월이었던 것 같네요. 대중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저는 손재주도 참 좋습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물건들을 실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업을 할 때 시중에 나와있는 물건들을 사용했는데요. 불편한 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개별화보다는 대중화가 중요하니까요. 제게 적합한 물건을 직접 만들곤 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손에 착 달라붙는 물건을 만들었을 때의 쾌감이란. 해 본 사람만 아는 법이지요. 

 

 

- 연쇄살인마 J의 회고록 중 일부 발췌

(* 해당 글은 소설입니다. 본 작품은 실제 단체, 인물, 사건과 관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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