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안에 경고등이 켜졌다

2화. 내 안의 위험을 읽는 일

by 밤비


돌이켜보면 내 첫 우울은 열 일곱,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어째서인지 살아야 할 이유보다 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찾기 쉬웠던 그 시절. 나는 밤마다 죽고 또 죽었다. 이십대가 되었어도 기실 변한 것은 크게 없었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넘겨버린 우울은 몸과 마음 곳곳에 스며들어 어딘가 고장난 기계처럼 작동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네 살이었던 삼십대 초반, 다시 또 고개를 드는 죽음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크기의 공포를 느꼈다. 태어나 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각 시기마다 우울은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왔지만 언제나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응급 입원도 가능하다는 담당의사의 말을 들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켜야 할 아이가 있었으므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져야 했다. 사라질 수 없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했다. 다행히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만에 약물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고 일상이라는 수면 위를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었다. 한동안 우울은 잠잠했다. 이후로도 감정의 기복은 있었지만 나름의 노하우로 잘 조절해왔다.


최근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단순히 조금 가라앉는 시기인가보다, 가볍게 여겼다. 꾸준히 글을 썼고, 운동을 했으며, 사소한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힘을 끌어모아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모니터 앞에서 한 번, 남편이 매운 걸 사러 나간 사이 또 한 번 더. '지금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눈 앞이 캄캄해진다. 저 먼 심해에 남겨진 것만 같은 고독이 온 몸을 휘감는다. 그것은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에 가깝다. 그럴 때면 끝을 떠올린다.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건 오직 죽음 뿐이라는 생각에 가 닿는다. 이 지긋지긋한 어둠을 벗어나려면 이보다 더 극단적인 곳으로 뛰어들어야만 할 것 같다. 온 몸의 혈류를 타고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당장 모든 걸 끝내고 싶은 욕구와,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이 맞서 싸운다.

아직도, 여전히 자살하는 사람을 두고 아픈 말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멍청하다, 미쳤다, 죽을 용기로 차라리 살지, 비겁하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 ... 이런 말들을 실제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자살 시도자만큼이나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세상이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나는 확신한다. 자살 사고나 충동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쉽게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자살 사고는 '죽고 싶다'같은 욕망이 아니었다. 극한의 어둠 속에서 소슬하게 떠오르는 감정은 단연 '무섭다'였다.


요 몇 주 간 죽음의 그림자가 무섭도록 자주, 집요하게 나를 덮친다. 그럴 때마다, 살기 위해 거의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찾았다. 새벽녁 침실에서는 곁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품으로 강아지처럼 파고들었고, 늦은 밤 서재에서는 깨어있는 남편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양 팔을 감싸 안아 스스로의 부피감을 거듭 확인했다. 고른 숨을 내쉬는 아이의 목덜미에서 시큰한 땀냄새를 맡으며 생의 이유를 떠올렸다.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달래는 남편의 품에서 안도를 길어올렸다. 나비 포옹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나의 존재를 계속해서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무서우니까, 죽음이 가까워 질 때마다 용기를 내야 했다. 나도 내 목숨이 애처롭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첫 질문으로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리 높느냐"고 던졌다. 자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다는 사실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자살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그림자였다. '극단적 선택' 같은 우회적 용어 대신 '자살'을 전면에 내세우고, 많은 이들이 소중한 생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들이 촘촘히 생겨나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지만 우울은 감기처럼 스며들어,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순간 나를 잠식한다. 우울은 늘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내 곁을 배회했다. 오르내림의 끝에서 가장 위험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언제나 자살 사고였다. 그 신호를 놓치면 안 된다. 그 그림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를 살핀다. 자살 충동을 말로 꺼내 놓는 순간, 그 그림자는 내게서 한 걸음 물러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살고 싶다.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혹은 가까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락하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실물: 끝나지 않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