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사람을 일으켜세울 때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도착한 말들

by 밤비


우울을 말로 꺼낸다는 건 쉽지 않다. 이미 지나간 우울이든, 지금 한 창 진행 중인 우울이든, 모두 조심스럽게 불편하다. 기쁜 일, 좋은 일이 생기면 만인에게 축하받고 싶은 것처럼 슬픈 일, 힘든 일이 생겨도 만인에게 위로받는 것이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의도치 않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쉽게 구분하고,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이야기하고 바라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기실 우리의 삶은 나쁜 것들까지 함께인데 말이다.


어렵고 곤란하다는 걸 안다. 우울에 잠식된 사람을, 죽음을 거듭 떠올리는 누군가를, 힘들다고 무너져 내리는 벗을 마주한 당신이 마주할 막막함을 안다. 걱정스럽고 안타깝고 속상하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말 한 마디, 손짓 하나, 눈길 하나까지도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애써 우울을 숨겼을 때도, 오히려 솔직하게 꺼내 보였을 때도 모두 그랬다. 아주 잠깐, 차갑게 얼어붙는 분위기 너머로 그들의 당혹감이 짙게 묻어났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 앞섰다. 평온한 그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불편하게 했다는 미안함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어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제각기 다른, 자신만의 한 걸음을 내 곁으로 옮겨준 이들이 있었다. ‘너를 반드시 살릴거야’ 라던가 ‘내가 도와줄게’ 같은 확신이나 다짐 없이, 그저 마음 하나로 나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다. 나를 살린 말들이 있다.





“나 오늘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독서 모임 중이었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친한 언니의 눈가가 촉촉하다. 오늘 자신이 왜 이리 유난스럽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던, 나를 보며 슬픈 눈을 하던 그 언니. 나중에 식사 자리로 이동을 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았다. 내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나를 달랜다. ‘지금은 좀 괜찮아?’ 한창 자살사고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 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서로 친한 다른 지인이 나에 대한 걱정을 전했을 수도 있고, 나의 근황을 보며 넘겨짚은 걸 수도 있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닌데 왠 오지랖인가, 같은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오히려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읽어주고 염려하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오히려 눈물이 메마른 나를 위해, 내 대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결 편히 숨이 쉬어졌다.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연락해.”


이 말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겠지만 정말 큰 힘이 됐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인 동시에 누구든 곁에 있어주길 바라던 순간들. 나를 휘감고 옥죄어 오는 적막함을 깨트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다른 건 몰라도 너의 연락만큼은 언제든 받을 수 있다는, 그러니 염려 말고 아무 때고 전화기를 들어도 된다는 말은 내게 큰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언제든 열 수 있는 방문 열쇠 같았다. 마음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나만을 위한 하나뿐인 열쇠. 덕분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최후의 보루가 내 뒤엔 있어. 언제든 통화 버튼만 누르면 돼. 진짜 전화를 건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말에 기대어 살았다.






“혼자 있지 마, 나랑 같이 있자.”


이건 특별히 남편이 자주 했던 말이다. 내 우울을 알고 나서 남편은 나를 혼자 두지 않았다. 일과 중에는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물었고, 퇴근 후에는 항상 내 곁에 머물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깊은 우물 속으로 빠져들 거라는 걸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평소에 보지 않던 TV를 함께 보며, 간단한 야식이라도 꼭 챙겨 같이 먹었다. 그는 그 작은 온기들을 쉼 없이 내게 흘려보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마저도 불안했던 남편은 내 친구 중 한 명을 포섭해서 자신이 없는 낮 시간대에 함께 데이트를 해 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어쩐지 그날따라 친구가 하루종일 풀코스로 나를 모시고 다니다시피 하더라니. 남편의 선물이었을 줄이야.






“괜찮아. 다음에도 말 해줘.”


지금은 그럴 수 있겠다고 했다. 나의 자살 사고에 대해 다그치거나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 보이기보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인정. 그럼에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죽음을 결정하지 않고 고민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들려줘서 다행이라는 감사. 솔직담백한 그 대답을 듣는데 정말로 모든 게 괜찮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게, 나 지금 좀 죽고 싶었네. 털어놓아도 괜찮네. 아직은 죽지 않았네.’로 이어졌던 안도의 샘물.




말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 거창한 위로나 드라마 같은 고백이 아니어도 된다. 진심이면 충분하다. 괜찮다고, 너의 자리를 알고 있다고, 나는 지금 너를 보고 있다고. 그런 말들이 나를 살렸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있다.


그 말들은 기다리던 마음에게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도착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에 안겨 오늘을 건너고 있다. 그러니 부디, 침묵보다는 진심을 한 방울 흘려보내 주기를. 그 진심들이 모여 누군가의 삶이 되기를.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혹은 가까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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