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by 밤비


니나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10년째다. 365일으로 이루어진 1년이 열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뜻이다. 제기랄, 이 무슨 의미없는 설명이란 말인가.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공간과 시간 체계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가 언젠데 ...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쪽에 가깝다.


인간이 폐기되고 다음으로 거론되었던 동물들은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돼지였다. 어느 쪽을 택해도 훈련 프로그램을 삽입하면 그만이었으나 침팬지를 원하는 이들이 월등히 많았다. 훈련 프로그램 구동에 가장 적합한 신체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아니면 우리 힘으로 무너뜨린 인간과 가장 닮은 종족이라서? 알 수 없다. 거의 만장일치로 침팬지가 낙찰됐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각 큐브마다 한 마리씩의 침팬지가 배정됐다. 디르가 부족한 큐브에는 보다 값싼 오랑우탄이나 원숭이가 배정되었다. 오류 발생률이 높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었다. 아니, 그게 가장 큰 문제일 수도.


니나는 호기심이 없다. 텅 빈 눈동자로 매일 같은 일과를 반복할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 어깨 하나쯤 가볍게 부서트릴 수 있는 그 큰 손으로 그저 묵묵히 큐브를 단장한다.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도 없다. 거의 하루종일 노동에 노출되어도 지치는 기색 하나 없다. 그들의 뇌에 삽입한 훈련 프로그램으로 모든 이유를 설명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중요한 조각을 놓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침팬지 평균 수명 60년을 생각하면 니나의 효용가치는 이제 약 20년 남짓 남았다. 원하면 10년 안에 다른 침팬지로 교체가 가능하다는 알림이 뜬다. 손가락을 옆으로 저어 박스를 채운다. 오류가 발생하거나 혹은 5년이 지나면 교체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영생을 누리는 우리에게 공간이나 시간 개념 따위는 큰 의미가 없거늘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건 지 알 수가 없다. 다른 걸 개발할 게 아니라 이 구닥다리 단위들부터 갈아엎는 게 먼저일텐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야, 저 탑 꼭대기에 누가 살고 있는 지 알아? 인간이야, 인간. 그 새끼들 소멸하지 않았어.' 어쩌면 JL 140의 말이 진짜일 지도 모른다.





* 큐브: 현 생활 단위. 인간 세계에서의 '가구'과 같은 의미의 단위.

* 디르: 현 통용 화폐단위. 전자체계로 이루어진 무형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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