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울은 당신만의 것이다

같지 않은 고통, 다를 수밖에 없는 회복

by 밤비


같은 병명으로 묶여 있어도 그 안에서 겪는 경험은 모두 다르다. 우울도 그렇다. 하나의 어떤 진단명으로 묶기에 우리는 서로 다양하고 각자 고유하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스펙트럼이 몹시 넓다. 눈물과 무기력, 자살 사고처럼 널리 알려진 증상 외에도 수십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다. 내가 경험한 우울 역시 그중 하나였고, 그것이 우울의 전부는 아니다. 주변의 우울 경험자들의 이야기만 몇 들어봐도 그 다양성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니 회복 방법이나 과정도 마찬가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살 사고로 정신과를 찾았을 때, 나는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생애 첫 정신과 약물 치료였다. 수면 장애도 동반되고 있어 해당 약물도 함께 사용했다. 흔히 처방받는 감기약을 떠올리면 안 된다. 몹시 귀여울 정도의 작은 알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게, 이것만 먹으면 된다고?


처음부터 약물을 증량해서 처방하는 의사는 없다. 적은 양으로 일주일 가량 추이를 살피고 양을 조절하거나 아니면 같은 효과를 지닌 다른 약물로 교체하기도 한다. 내 경우는 아주 운이 좋았다. 편두통으로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여러 부작용 때문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번 약을 바꾸어야 했는데 우울약은 단 번에 효과를 보였다. 심지어 수면 관련 약물은 낮 시간대에 지나치게 졸음이 밀려오는 문제로 아예 처방에서 제외했다. 그러니 반 알 짜리 하얗고 쬐끄만 알약 하나가 하루에 섭취하는 약의 전부였다.


효과는 더없이 좋았다. 고작 손톱만 한 크기의 알약의 효과는 몹시 강력했다. 잠시. 오해가 없기를. 효과가 강력했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풀어 설명해야만 하겠다. 인지적 왜곡이 현격히 떨어졌다. 별 것 아닌 자극에도 잔뜩 날을 세우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던 갑옷 하나가 누그러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눈물도 줄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흘린 수많은 눈물들, 그 억울함과 분노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것만으로도 일상이 한결 편안해졌다. 차분하게 모든 자극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변화의 출발이었다. '다음' 혹은 '다른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밝힌 것처럼 회복의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약물치료가 만병통치방안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 건 비단 다른 치료와 비교한 말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지인들은 약물치료가 힘들었다. 어떤 이는 수많은 약을 거친 뒤에야 겨우 안정을 찾았고, 어떤 이는 부작용으로 일상을 견디기 힘들었는가 하면, 약물치료가 오히려 고통이 된 이도 있었다.


나의 이 글이 약물치료를 염두에 두고 있던 분들에게 최악의 소식이 아니기를 빈다. 왜냐하면 정신과를 방문했다고 해서 약물치료만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처음 정신과를 찾았을 때 내 담당의의 첫마디는 단순했다. "잘 오셨어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했다. 처음 보는 얼굴. 낯선 공간. 그런데 그 다정한 말 한마디가 나를 무너뜨렸다. 소파에 앉자마자 나는 눈물부터 왈칵 쏟아냈다. 담당의는 말없이 각티슈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재촉하지 않고,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묵묵히 기다렸다. 나의 눈물이 마르고 입이 열릴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담당의를 만나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효나 부작용 등 약물처방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1%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말길. 정신과는 치료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조용히 기다려주는 공간이기도 하니까.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치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 혹시 당신이나 당신의 가까운 사람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혹은 가까운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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