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닫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복도에 울렸다. 지연은 엄마 영숙의 손에 이끌려 내팽겨 쳐지듯 거실 소파로 내몰렸다. 병실의 톡 쏘는 알코올 냄새가 여전히 지연의 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힘없이 앉아있는 모양새를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영숙은 서둘러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마다 짙은 한숨이 번졌다.
영숙은 부산하게 죽을 쑤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지연을 엿보았다.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덩그러니 시체처럼 앉아 있는 지연의 가슴팍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베란다의 잠금장치가 제대로 걸렸는지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혹 미처 치우지 못한 날카로운 물건이 굴러다니지는 않는지 초조한 눈길로 거실을 훑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지연의 가느다란 손목을 두껍게 감싼 하얀 붕대가 자꾸만 영숙의 눈가를 찔렀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너덜거리는 지연의 손목 위로 수건을 감싼 채 숫자 1, 1, 9를 차례로 누르던 영숙은 야생 짐승처럼 목 놓아 울부짖었다. 제 손을 떼면 곧장 딸아이의 손이 그대로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아서, 차갑게 식어가는 손가락 끝이 지점토처럼 굳어버릴 것만 같아서 잔뜩 겁에 질린 채 구급 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영숙을 지연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연은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영숙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난리 통에도 지연의 오빠, 진건은 제 방문을 닫은 채 영단어를 외우느라 여념 없었다. 수능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남짓. 그 무엇도 진건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쯧, 죽으려면 조용히 죽던가, 시험이라도 끝나고 죽던가.’ 진건의 좁아진 미간 사이로 짜증이 넘쳐흘렀다. slaughter, smash, suicide … 진건은 외워야 할 단어들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연은 본인이 죄인인 양 연신 불안한 몸짓으로 불 앞을 지키고 선 엄마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아주 느리게 눈동자를 굴리자 오늘도 어김없이 굳게 닫힌 방문 하나가 가득 부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철옹성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 저 방문 너머, 이 순간에도 책상 앞을 지키고 앉아있을 진건의 뒷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그 뿐이랴. 사정없이 구겨지던 침대 시트의 감촉, 거칠게 몸을 짓누르던 어깨의 무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이 입술을 틀어막았던 커다란 손, 찢어질 듯한 하반신의 통증 …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 진건의 그 몸을 떠올리는 순간 지연은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엄마는 절대 모를 거야.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만 알고 있어. 나만.’
어제, 자신이 엉뚱한 곳에 칼날을 휘둘렀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이미 지연의 손은 진건의 방문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고 있었다. 흰 붕대가 감긴 손에는 엄마 몰래 숨겨두었던 면도날 하나가 번쩍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