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너머의 마음

10대의 우울에 이름을 붙여주는 글

by 밤비


10대의 우울은 열병 같았다. 단순히 사춘기라고만 생각했으나 돌이켜보면 우울이었다. 14살 중학교 1학년 쯤부터 시작되었으니 사춘기로 오해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쓰나미 같은 감정의 파도가 일분, 일초 단위로 얼굴을 바꾸던 때였다. 빈번하게 무기력했고, 그릴 수 있는 미래가 없었고, 죽음은 선명했다. 물론 그런 속사정은 나 혼자만의 문제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뾰족한 가시를 오롯이 안으로 밀어붙였다. 겉으로는 너무도 멀쩡해보였으리라.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소위 엄친딸에 가까웠다. 반장을 곧잘 도맡았다. 국영수 기본 과목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예체능을 아우르는 전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무용해보이는 것들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도 잘 했고, 다양한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당시 유행하는 춤도 적당히 잘 췄다. 실로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많은 특별한 학생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부모님 말씀도 어기지 않는 착한 딸. 친구들과도 제법 잘 지내는 여학생. 고민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10대. 그건 다 가면이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그냥, 그랬다. 당시의 나로서는 전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다들 제 품에 칼날 하나쯤은 품고 사는 것 아닌가. 냉소적이고 허무한 마음이었다. 모든 것에 열정적인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어떤 것에도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를 죽이며 살았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 그 내일이 지나면 또 다른 내일. 뭔가를 기대하거나 꿈꾸는 일은 조금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누군가가 그런 마음을 알아채 주길 바래서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괜찮으니,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을 10대를, 누군가는 꼭 따스히 손을 맞잡아 주면 좋겠다. 뭔가 유별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도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걔가 왜?" 놀라기보다는 언제나 곁에서 "널 알고 싶어" 말해주면 좋겠다.


10대의 우울을 하나로 정형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사회성이나 품행장애가 우려될 정도의 문제 행동으로, 겉으로는 말짱하지만 속은 곪는 형태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지독하게 해하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 무수한 갈래의 우울이 잠재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 것. 아이가 보이는 어떤 행동들에 숨겨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그런 존재가 곁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끝내 살아낼 수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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