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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사랑 한 모금

매일글쓰기 8일차

by 밤비

아침, 아이가 집을 나서고 남편도 분주히 면도를 하고 출근 준비 중이다. (남편은 출근 시간이 아이와 비슷하다) 낑낑대며 어제 건조기에 넣어두었던 뜨끈뜨끈한 옷가지들을 꺼내와 거실에 부려놓는다. 우수수 떨어지는 수많은 빨래더미의 양을 보고는 남편이 뜨악해한다. 나의 한숨이 이어진다. 남편이 나를 돌아본다.

"무슨 일 있어?"

"자기는 이거 안 개잖아, 내 맴을 알우?"

가볍게 투정을 부려본다. '사실 나도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 전에 이 빨래를 다 개어 정리해두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없는 동안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깨끗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남은 일과를 소화할 수 있다. 그치만 오늘은 월요일이고 (월요일은 그냥 힘들다!) 월경통으로 배가 아프고 몸이 무겁다. 나도 가볍게 내 몸단장만 끝내고 집을 나서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는 이 상황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진다.'라는 기나긴 메시지가 담긴 짧은 투정이다. 남편이 들은 체 만 체 안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 뭐 어쩌겠어. 당신도 지금 나가야 하는데.

남편이 불쑥 방에서 튀어나와 만 원짜리 지폐 하나를 건넨다. 이게 무어냐 올려다보니 남편이 씨익 웃는다. 당장 도와줄 방법은 없고 오늘 맛있는 커피라도(스타벅스 커피랬던가) 한 잔 사 마시란다. 안 방에 들어가 비상금 상자를 연 게 분명하다. (남편은 안 방에 비상금을 보관한다. 위치를 대충은 알지만 결코 열어보지 않았다.)

얼른 만 원을 받아 챙긴다. 코 평수가 넓어진다. 벌름벌름 거리는 콧구멍으로 웃음 바람이 샌다. 어차피 개야 하는 빨래, 일순간 빨래를 신나게 갤 만큼의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허술하게 빨래 개는 걸 돕는 것보다 이 편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남편은 곰손이다)

돈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기분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사소한 행동에 담긴 남편의 마음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당장 출근을 해야 하니 마주 앉아 빨래 정리를 도와줄 수는 없고. 예쁘고 고운 말로 나의 수고스러움을 치하하면 그만일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나의 기분이 당장 좋아질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냅다 던지든 돈만 내미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이라는 당위성까지 붙이는 노련함이라니. 함께 산 8여 년의 시간 동안 나만 남편을 간파한 게 아니다. 남편도 나를 참 잘 읽는다.

출근하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했다. 간이 작아 비싼 브랜드 커피를 사 마시는 대신 평소 마시는 곳에서 헤이즐넛 시럽을 추가했다. 이천 원을 쓰고 팔천 원이 지갑에 남았다. 남편이 선물해 준 오늘의 커피 한 잔. 시원한 사랑 한 모금 넘기며 아침의 에피소드를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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