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이야기: 우리는 모두 가버나움에 산다

난민이 난민에게

by 찬란한 기쁨주의자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내용을 포함합니다. 영화에 별다른 반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 관람 전 글을 읽으시는 것이 큰 낭패는 아닐 것임을 친절히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일상의 비극


영화는 실제 레바논 거리의 아이와 난민 인물들을 캐스팅했고, 그들에게 ‘일상’인 순간들이 과한 자극성도 연출도 없이 무덤덤하게 흘러간다. 그 잔잔한 시선들이 어떤 폭발적인 감정표현이나 비판보다 날카로웠고, 영화를 본 후에 부끄러움과 불편함이 한동안 우리를 사로잡았었다.


태어나서부터 자인이 마주한 세상은 매연으로 가득했다. 무너진 건물과 엉킨 선들 사이로 아이들은 가짜 총을 만들어 무언가를 부수며 전쟁 흉내를 낸다. 마약을 하고 서로를 때린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아이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손길이 아니라 서로를 보지 못하게 하는 연기일 뿐이다.


5평 남짓한 방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인생은 고되다. 부모의 잠자리 순간을 비롯하여 형제자매의 첫 생리 순간까지 날 것채로 드러난다. 두 가지를 목격하는 쟈인의 반응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무덤덤한 비극에 일조한다.


조혼이 흔한 사회,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혹은 여자아이에 대한 가치평가가 존재하는 사회, 12살인 쟈인의 여동생은 족히 열댓 살은 차이나 보이는 동네 남성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쟈인은 나서부터 자연스레 그 권력구조를 보았고, 여동생의 생리혈의 시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고로 자신의 웃옷을 벗어 패드로 쓰게 하며 어떻게든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


영화의 컷 구성은 치밀하다. 항공 풀샷으로 판자촌의 지붕들을 덮은 폐타이어들과 쓰레기들은 이 땅에도 여전히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는 가장 낮은 땅이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 준다.

그 작은 아이 쟈인의 뒤를 따라 골목을 지날 땐, 눈을 감고 싶은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버린다. 가버나움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게 한다.



#주변


인간은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무엇을 보고, 듣고, 먹는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쟈인이 겪는 보고 듣는 일상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식이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유’로 부모를 고소하는 일을 납득하게 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자인이 그 부모에게 결국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구금도, 벌금도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인생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를 그만 낳게 해 달라는 것.

그 별 것 아닌 듯 무심히 뱉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서류의 존재는 존재의 존재에 우선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밝은 장면처럼 연출되었다. 조명도 인물의 표정도 영화 내내 본 것 중 가장 밝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슬펐다. 주인공 쟈인의 여동생이 어린 나이에 한 임신으로 하혈이 심해 병원을 갔을 때 그녀가 병원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도, 라힐이 자신의 아들인 요나스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고 그 본인도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유도, 결국 ‘서류’가 없어서였다. NGO에서 일을 하며 만났던 시리아 난민들의 삶이 떠올랐다.


그것은 실재(實在)였다.

한 존재를 증명하는 종이가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존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모두 난민이다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입학증명서, 재직증명서, 부동산 계약서, 토익 점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종이가 증명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 쟈인의 활짝 웃는 모습을 영화 내내 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장면은, 결국 수감증이 필요해 사진을 찍을 때였다.


상투적이나 진실로 말하자면, 남 이야기가 아니다.

종이로 증명되는 사회에서 너도 나도 그 종이 없이 난민이다.


서울난민, 한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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