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기대>

퇴근길 전철에 나란히 앉으면

옆자리의 흔들리는 인생이 머리를 기울여 올 때가 있다.

까딱까딱 조금 헝클어진 머리가,

고된 술냄새가 어깨에 닿을까

나도 몸을 기울인다.


그러다 아차차

나도 원래 잘 기대는 사람이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버스 같은데 앉으면

기어이 생면부지 사람에게도 기대고야 마는

머리가 부끄러워 부러 잠을 참기도 할 만큼.

또 언제는 닿을 수 없는 너의 등짝이

참으로 따뜻할 것 같아 흘긋거리기도 하였던 나를

기억하고야 만다.


잊은 채 사는 것이 태연해질 때쯤

느닷없이 찾아오는 균열이

서로에게 어깨 한쪽 내어주지 못한 채

서로를 등졌던 동굴에

볕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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