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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Dec 19. 2020

<오늘의 시> 탑골 순례길

12월, 종로 3가를 지나며 쓴 참회록

사람 하나,

탑골공원을 둘러

푸르른 소주 한 병이 놓여있다

곁에 놓인 빈 그릇은

태초부터 무엇을 담아 본 적 없을터


사람 둘,

쓰레기 통에

깊숙이 들어간 팔은

회갈빛 어둠을 휘두르고

간신히 인정의 부재만을 꺼내 든다


사람 셋,

잘린 다리를

맞이 하는 것은

이미 에인 살을 선연케 하는

겨울바람뿐


사람 셋을 만나고 나서야

차가운 구유에 뉘었을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차차


살이 꽉 찬 지갑을 열어보니

오늘따라 많은 현금이 야속하다

겨우 만원 한 장 꺼내 들고

뒷걸음쳐 내려놓는다


내 몫의 부끄러움을 묶어둔 채

뛰어 도망친다


사람 셋

고깃불 앞에 모여 앉는다

사람 하나가

치—익

타들어가는 살덩이 앞에

배춧잎 한 장 내밀듯

죄를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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