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서울 지하철에서 읽는 시
보이는 것이 다
일리 없다
비가 오는 전철역
에스켈레이터 앞에 쪼그려 얹아
물기를 닦는 이의 이름은 김명(明)자이다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사이에 쪼그려 앉아
남은 생을 찾는 이의 이름은
이형복(亨福)이다
피로로 휘둘리는 전철 칸
겨우 난 한 자리를
내어놓는 이의 이름은
당신이다
보려고 하면 다
보일 것이다
그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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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부터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내려간 지하철 입구 에스켈레이터. 없는 자리를 찾아 쪼그려 앉아 있는 분이 보였다. 역사를 청소해 주시는 분 같았는데(우리 사회의 유니폼은 대게 그런 기능을 하니까) 왜 내가 흘린 물기를 그리고 필연적으로 몇 시간 동안 흘러내릴 물기들을 닦는 것은 저 무릎의 몫인가 싶었다.
• 전철 문이 닫히고 움직이고. 멈춤과 진행 사이 찰나에 한 사람을 보았다. 그의 온 생애가 담긴 손수레 하나를 옆에 두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 내릴 수도 내려서도 안 되는 출근길에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마음껏 무기력해지고 만다.
• 이래저래 피곤한 마음이 어깨를 타고 내려왔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서야 앞자리가 비었고 멀뚱히 서 있는 내게 어서 앉으라고 손짓을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드디어 오늘의 첫 웃음이 났다. “저는 바로 내려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