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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06. 2021

과잉피로사회

19-1019

깊이 있는 사색적 삶의 회복


과잉성과, 과잉정보, 과잉활동으로 표상되는 현대사회는 사색적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 '시간의 향기'를 되찾자, 이는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머묾, 지속에 대한 공명이기도 하다. 물질문명의 발전과 비례하여 비대해져 가는 현대건축은 점점 시각에 호소한다. 프레데릭 제임슨은 시각적 편향을 '작위적인 깊이 없음'으로 설명하고 있고 데이비드 하비는 이를 실존적 깊이의 상실과 연관 짓는다. 사색적 삶을 회복하고 장소성을 회복하려는 건축적 욕구가 힘을 얻는 이유이다.

-도무스 코리아(domus korea) 2, 사색적인 삶, 건축의 과제


오늘날의 사회; 과잉에 의한 피로사회


도시는 점점 하나의 공장으로 변하고 있다. 사람들의 땀과 노력은 회색 연기가 되어 공장의 굴뚝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들에게 시간은 깊고 여유로운 생각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저 타이머일 뿐이다.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해,
9시까지 출근이야,
10시 30분에 회의가 있어,
12시니까 밥 먹어야지,
아직 2시야?
6시니까 퇴근해야지,
벌써 7시네, 밥 먹어야지,
11시니까 슬슬 자야겠다,
내일도 6시 30분엔 일어나야 하니까, 오늘처럼.

-입사하고 처음 느꼈던 끊임없이 굴러가는 시간의 굴레


시간이 그저 숫자가 돼버린 사회, 흘러가는 시간을 외면한 채로 점처럼 찍힌 시간을 바라보며 사는 사회,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의 사람이 되기 위해 좋은 성과만을 바라는 사회, 시각적인 매체로 환원된 정보가 흘러넘쳐서 어떤 정보가 나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고 심지어 사실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사회, 사회성은 그것의 나름대로 유지하고 결속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개인적인 시간 또한 포기하지 못한 채로 자그마한 시간도 허비하지 못하는 사회. 이것이 현대의 사회다. 그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 피로와 그것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기만 하는 사회, 모든 것이 과해서 부족한 것만 못한 사회, 과잉-피로사회.




사색적 삶의 회복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사람은 시간을 따라가고 있다.
사람과 시간은 평행하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드디어, 사람은 그곳에 멈췄다.
사람은 지나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흐르는 시간 옆에 멈춰 서기(19-0723)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 과잉-피로를 해소하고 사색적 삶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곁에서 조용하게 흐르고 있는 시간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옆에 잠시 멈춰 서서 흐르는 시간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멈추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이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건축은 지극히 기능-지배적이다. 건축을 구성하는 기능의 합목적성은 분명 중요하지만 기능이 필요 이상으로 지배적인 건축 안에서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 외의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과 더불어 도시에서 건축으로 진입하기 전에 마주하는 광장이나 마당, 건축 안에서 이질적인 밀도를 만드는 중정이나 아트리움, 이동의 역할을 수행하는 복도나 회랑, 기능과 기능 사이의 매개 및 전이 공간에 대해서 상상해야 한다. 그들의 단순한 목적을 넘어서서 멈춤이나 머무름, 지속에 대한 '다중적인 목적'을 내포할 때에 비로소 시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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