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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23. 2021

공감각, 상실과 회복

19-1018



감각상실의 장소, 감각회복의 필요성




감각상실의 장소, 다른 감각은 배제된 채로 시각이 우위에 서있는 건축, 시각적인 정보로 환원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감각이 곤두서는 날이 있다. 시간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느 아침, 분명히 눈부신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야 하는데 그저 어두컴컴하다. 어제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바스락거리던 이불이 왠지 모르게 살에 턱턱 붙는 느낌이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난간에 무엇인가가 계속 부딪혀서 맑은 쇳소리가 들리고, 방 안에는 쾨쾨한 물에 젖은 낙엽 냄새가 난다.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아침, 모든 감각이 알고 있다. 밖에 비가 오고 있다.




공(共)감각,

감각들의 복합현상, 포괄적인 기분과 느낌


이제 삶과 이야기는 정보, 사회관계망이라는 이름 아래 보다 가볍고, 보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텍스트로 변한다. 그렇게 양산된 이미지들은 거대한 이미지의 천국, 시각의 세상을 만든다. 몸과 다른 감각은    온데간데없고 눈만 남는다. 감각의 풍부함도, 심리의 미묘함도, 정신의 숭고함도, 결국 삶의 깊이도 매끈하게, 미끈하게 컴퓨터 화면 속에서 반짝인다.
-도무스 코리아(domus korea)02, 장소에 대한 감각의 상실

감각의 요소들은 한데 어우러져 그 장소에서의 경험을 기억할 만한 순간으로 바꾼다. 덧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물결 속에서 의미 있게, 때로는 의미 깊게 각인되는 경험은 삶의 시가 된다.
-도무스 코리아(domus korea)02, 삶의 시가 되는 감응의 장소


감각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사진으로 보면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실제 그 장소에 가면 거짓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건축에서 느껴지는 복합적 감각은 시각적인 정보로는 대체될 수 없으며 이것이 다양해질수록 더 많은 감각이 겹쳐지고 풍부한 감각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공감각적 공간에 대한 경험은 매끈한 일상 속에서 자그마한 파동이 된다. 이러한 파동이 모여서 지속적인 박동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은 더 기억할만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각적인 세계는 거창하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 원래 한국에서의 건축은 복합적인 감각의 장이였으며 공(共)감각의 세계였지만 지금의 사회로 발전하면서 감각적 경험이 퇴색되었을 뿐이다. 천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손에 닿았을 때의 따뜻함, 비스듬하게 열린 창문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깥공기의 냄새, 필연적으로 노출되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난 공간의 적막함을 상상해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는 참 다양한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늘 그래 왔듯이 무던하게 지나가는 일상에 '공감각에 의한 환기'는 나를 잠깐이나마 행복하게 한다.




공(空)감각,

비어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감각이 스며들 수 있는 상태, 규정되지 않은, 비워진 공간


건축을 공부하면서 항상 비워진 공간과 상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건축을 가득 채운 기능에 대한 피로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가득 비워진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기능으로 채워진 공간보다 자연이 자리 잡은 비워진 장소에서 오히려 다양한 감각이 발현될 수 있다. 또한 비워진 공간과 자연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공간으로 쉽게 접근하고 머무를 수 있을 때, 건축 안에서 자연을 응시할 수 있고 자연과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을 때 몸의 모든 감각이 장소를 느끼게 된다.


형태의 일부가 비워짐으로 인해서 창출된 외부공간, 기능의 일부가 비워짐으로 인해서 창출된 기능-없음의 공간, 기존의 쓰임새가 사라지고 남은 폐허의 공간을 상상해보자. 건축의 안에서 자발적으로 외부공간을 찾아가고 기능-없음의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폐허에서 건축의 원형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발적으로 공감각의 기회를 마주한다. 이러한 공간이 바로 '감각의 장소'이며 그것이 있어야 '장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감각의 장소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단편적 감각에 지배받는 사회와 건축, 일상 속에서 기억할만한 순간을 경험하고 이것이 추억할만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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