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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21. 2021

전자시대

19-1101


시대성

어느 한 건축가의 작업을 합목적과 장소에 관계없이 일관 짓게 하는 것은 그 건축가가 가진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작의이다. 따라서 건축가의 항상성이라고 일컫는, 시대를 관조한 작의가 투영된 건축의 사상적 배경, 이를 건축의 시대성이라 하자.

- 빈자의 미학, 승효상, 17p



디지털로 가득 채워진 세상, 전자-시대.



현재, 쏟아지는 정보들은 디지털화되어 인터넷 세상을 떠다닌다. 지폐나 동전을 떠나서 이제는 카드까지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계산대에서 핸드폰을 갖다 대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월요일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은행, 왁자지껄한 소리가 하루 종일 울려 퍼지던 시장,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옷을 사러 갔던 옷가게는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원래 있던 시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후퇴하였을 뿐)


내가 살았던 시간은 과거가 되었고 조그마한 역사가 되었다.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는 쇠퇴했고 새로운 전자-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느림의 미학은 게으른 것으로 간주되고 뭐든지 빠르게 처리해야만 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 삶 속에서 여유는 점차 사라지고 감각은 점차 일원화되며 시간은 자본의 굴레 안에서 빠르게 흘러만 간다.


현대의 전자-디지털 시대는 시각-중심적이다. 무향, 무취, 무미, 무성의 시대이고 일의적 감각에 지배받는 사회이다. 모니터에 비추어지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무감각에 가까운 사회이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에 잡혔다가 풀려나면 눈이 아프다. 그리고 내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반면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는 공-감각적(16 공감각, 19-1018)이다.

이차원의 모니터에서 뿜어 나오는 시각적이고 단편적이며 깊이 없는 그것들과는 다르다. 내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있고 내 귀로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으며 무엇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한번 맡아봤던 것 같은 냄새가 있고 입 안에 맴돌고 있는 맛이 있다. 시각적인 감각과 더불어 이러한 공감각은 삶, 그리고 공간에서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시간을 느끼게 됨으로써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게 된다. 이는 비로소 내 온몸으로 느낀 감각이고 경험이며 이것은 기억할 만한 무언가가 되고 잠시 느꼈던 시간에 의미가 생긴다.




가파도하우스 B동, 하염없이 부는 바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생각해보면 이날만큼 바람을 맞고, 듣고,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을이 지던 저녁, 바람을 보며 이 글을 썼다.



전자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과거로 회귀하지 못한다. 여전히 시각 지배적인 삶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계속해서 다양한 감각을 수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공감각적인 건축을 만들기 위해서 건축가는 '과거의 시대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비유적으로 현재의 건축에 투영'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과거의 시대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모방이 아닌, 과거와 현대의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룬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신체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과 방법을 유형화하고 다양한 기능들의 복합화를 통한 공감각의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건축이 공감각을 지향하는 순간,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을 되돌아보거나 상상할 수 있게 되고 일상의 굴레 속에서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들 수 있으며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한 건축을 되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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