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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24. 2021

회랑, 기능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것

19.10.17


기능에서 점차 멀어지다 보니 회랑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검은색 도화지에 흰색 사각형이 그려졌다. 가득 찬 도시와 건축에 새로운 공터가 생겼다. 무수한 발걸음이 지나다니는 도시의 사이에 잠시 앉을 수 있는, 혹은 기능에 진입하기 전이나 빠져나온 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하던 중간에 외부공간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기능에서 다른 기능으로의 이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공터가 생겼다. 중심에는 자연이, 열주의 너머에는 잠시 앉을 수 있는 의자와 복도가 있다. 그렇게 비워진 공간이 사람들의 발걸음과 머무름, 그리고 비와 바람, 햇빛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졌다.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회랑 너머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한참을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회랑, AMBULATORY

기능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 것.


기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기능을 어느 정도 보조할 수 있는 공간.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이 상충하거나 기능이 산개하여 있을 때, 그 사이에서 그것들을 엮어주고 이동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 또는 중간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공간이자 기능의 색깔이 조금은 옅어지는 공간, 기능의 사이에 존재하고 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는 반전적인 의미의 휴게공간.


기능이 중심적이고 위압적일 때, 또는 인지하지 못한 기능의 공간일 때, 그 내부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지 않아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어떻게 보면 복도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회랑은 정적인 행위와 동적인 행위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복도가 정직한 이동성의 공간이라면, 회랑은 이동과 머무름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또한 건축과 도시의 사이에서 거리를 조절하기도 하고 건축의 내부로 자연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회랑은 기능과 또 다른 기능, 성격이 다른 두 영역, 다가가기 쉽지 않은 공간의 사이에서, 혹은 그 주변에서 공간을 느슨하게 만든다. 기능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당위성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생활의 사소한 행복은 목적이 뚜렷한 기능적 공간보다는 오히려 느슨해진 목적 없는 공간에서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회랑은, 잠시 느슨해질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기능에서 잠시 이탈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자연을 응시할 수 있는 공간이며 이와 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과의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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