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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11. 2021

폐쇄적 경계

19-1024


폐쇄적 경계, 특이성을 가진 장소를 담는 그릇



장소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

경계는 그 너머를 짐작조차 못하게 하는 높고 단단한 '벽'일 수도 있고,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일 수도 있으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높은 '건물'이 경계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경계를 기준으로 경계의 안과 밖, 도시와 장소, 파괴된 땅과 그렇지 않은 땅 등의 2가지 영역으로 나뉘게 된다. (경계-두께; 어떤 경우에는 경계 자체가 두께를 가지면서 제3의 장소와 공간을 창출할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 글에서는 도시와 장소를 완전하게 차단하는 폐쇄적인 경계와 그것의 의미,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잊혀진 기억을 마주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SITE ANALYSIS


남영동 대공분실이 지닌 과거의 기억

과거의 남영동 대공분실은 억압과 구속을 상징하는 '고문의 시설'이었다. 장소를 둘러싼 폐쇄적인 벽을 지나서 사람들은 눈이 가려진 채 건물의 뒤편으로 끌려갔다. 1층에서 5층으로 이어지는 나선 계단은 사람들이 자신이 몇 층에 있는지 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했고 조사실의 모든 가구는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문은 각각의 방에서 맞은 편의 방이 보이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그들의 방에는 머리조차 들어가지 않는 조그마한 창문만이 존재했고 고문으로 인한 비명소리는 벽 너머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건물을 천천히 경험하고 과거의 시간을 기억한 후에 빈 공터로 나왔다. 건물을 뒤로하고 공허하게 비워진 공터의 주변으로 회색 콘크리트 벽이 눈에 띄었다. 장소를 둘러싼 높고 두껍고 단단한 벽을 따라 걸었다. 폐쇄적인 벽을 기준으로 무정한 도시와 차가운 기억을 지닌 장소가 대비되고 있었고 과거의 사건과 기억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있었다. 차갑고 무심한 벽에 손을 대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계 또한 과거의 일부이고 건축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장소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과 분위기가 희석될 것이라고.


Exclusive Wall - 배타적인 벽


기억을 머금은 폐쇄적 경계

경계가 폐쇄적일수록 그 너머의 영역을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경계는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고 경계 내부의 건축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부한다. 또한 접근성은 자연스럽게 불편해지며 건축은 폐쇄적인, 그리고 사적인 장소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장소가 공적인 영역으로 변화하였을 때, 경계를 보존함으로 인해서 과거의 분위기와 장소성을 짐작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높고 단단한 벽을 따라 걷는다고 상상해본다. 영역의 외부에서는 그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으며 애초에 어떤 성격의 장소와 건축 인지도 인지할 수 없다. 경계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있었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장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에는 지나온 경계와 그 안의 장소에 대한 공포가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경계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특이성을 가진 장소를 담아내었다. 특이성이 사라진 장소에 남겨진 경계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을 머금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매개로 하여 과거를 떠올린다. 이것이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경계를 어떠한 형태로든 보존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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