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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13. 2021

도시 - 성수동

19-1030


성수동; 기름때 묻은 톱니바퀴가 지속시켜온 도시.

4-2 PROJECT, 대림창고


처음 성수동에 간 날, 낮은 건축과 높은 지하철 플랫폼, 오래된 벽돌, 부서진 벽돌의 사이에 얼기설기 덧댄 회색 콘크리트, 날카로운 기계 소리, 작은 구두 가게, 낡아 보이지만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빌라들을 보았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성수동을 다시 상상한다.


성수동에 가면 그 지역만의 향기가 옅게 깔려있다. 넓은 도로에서 한 켜만 지나가면 보이는 공장들과 열린 문 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있고 건축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잔뜩 머금은 훌륭한 질료가 있다. 사라진 기능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 그 공간을 이루는 재료, 필요에 의한 새로운 기능, 그리고 과거를 유지하고 싶은 의지가 함축된 건축이 있고 어딜 돌아봐도 존재한다. 그 속을 아무리 다른 색으로 채운다 한들, 그 '원초적인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수동 - 대림창고의 안을 전혀 다른 기능이 온전히 점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전의 기능에서 남겨진 공간감과 재료들은 과거의 시간을 머금고 있다) 


지금까지도 과거의 건축을 현재의 새로운 기능으로 채우고 있다. 다만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옛 도시의 감각과 현재라는 시간의 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이들을 조율해야 한다. 이것이 도시와 지역성, 그리고 장소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MATERIAL; 지나가는 시간을 온전히 견뎌낸 훌륭한 질료


도시의 감각 - 지역성


서울은 다양한 도시를 품고 있다. 수많은 도시들은 각기 다른 향기를 가지고 성장해왔으며 시간이 흐른 지금, 또다시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버린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지역성과 장소성이 말살된 곳은 힘차게 굴러가던 톱니바퀴가 다 떨어져 나갔다. (성수동 - 공장지대의 후퇴) 금세 다른 톱니바퀴가 끼워졌고(성수동 - 거리를 가득 채운 카페와 레스토랑, 수많은 사람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톱니바퀴는 잘만 굴러간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왔던 모든 사람들이 안다. 그 지역에서 일을 했던 사람도 알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알며 다른 지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도 안다. 잘못된 톱니바퀴가 끼워져 있다는 것을.


하지만 과거에 기능하던 톱니바퀴들이 다 빠져나간 이유도 있다. 지나가는 시간과 그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계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하고 결국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어찌 보면 톱니바퀴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새로운 톱니바퀴가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모든 부품을 새 것으로 바꾸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기계를 도시로 치환하여 생각했을 때, 시간의 때를 모두 제거하고 새 부품으로만 재구성된 기계는 과거를 지워버린 도시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지운 도시는 기억을 매개로 한 장소성과 지역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성이 말소되고 오래된 도시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옛 도시의 향기와 그 틈을 채우고 있는 새로운 문화의 향기를 함께 맡을 수 있는 도시(지역성과 유연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도시)를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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