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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Oct 23. 2022

따뜻한 위요감

주한 스위스 대사관

경희궁 앞, 버스에서 내렸다.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우측의 오르막길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다 보니 낮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다. 땅과 건축, 하늘의 비율이 어느 하나에 치우쳐져 있지 않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걷다 보니 좌측으로, 나무들과 담장의 너머로 건물이 어슴푸레 보이기 시작한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이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


[대비]

 

재료 - 조그마한 문을 지나자 도시와 맞닿은 부분에는 무심한 콘크리트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송판 무늬가 새겨져 있는 커다란 매스와 벽은 다행히도 그것의 거대함과 무거움을 덜어내기 위해서 격자의 그리드가 죽죽 그어져있다. 그 틈으로 작은 그림자가 맺히고 거대한 벽으로 향하는 시선이 어느 정도 분산된다. 주차장 램프와 콘크리트 벽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석재(150*300, 150*450, 150*600, 3가지 크기의 석재가 일정한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가 촘촘히 깔려있는 다소 건조한 마당이 나오고 그 곁을 목재로 구성된 커튼월이 둘러싸고 있다. 커튼월의 일정 부분은 목재 루버가 감싸고 있고 멀리언 사이사이로 목재로 된 면이 일정하게 반복되고 있어서 유리의 크기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목재로 구성된 면의 비율이 많아진다. 또한 건물 내부의 멀리언 역시 목재로 구성되어 있고 그 크기가 외부의 것보다 더욱 크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목재의 따뜻함이 더욱 부각된다. 하얀 벽과 목재, 그것이 들여보내는 빛과 그림자가 공간과 파사드를 아주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풍경 - 공간을 천천히 돌아보고 다시 마당에 나가자 부드럽게 상승하는 매스의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화강석 바닥의 저편에 목재의 따뜻함이 유리를 따라 반복되고 그 위로 그리 빽빽하지 않은 아파트들이 하늘 사이에 놓여있다. 도시-콘크리트와 마당-목재의 대비도 흥미로웠지만 건물과 그 너머의 도시와의 대비도 건축 안에서 훌륭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전통]

 

스위스의 건축가가 한국 안의 스위스 대사관을 고민할 때,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빼놓을 수는 없었나 보다. 장소에는 마당이 있고 건축은 처마를 가지고 있다. 

 

마당 - 매스에 의해 둘러싸인 마당에는 위요감이 형성된다. 우리네 한옥이 목재의 따뜻함을 한껏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장소의 마당 역시 그 따뜻함을 가지려 했다. 그렇기에 마당이 가지는 위요감은 그 어떤 적막이나 침묵이 아닌 소곤거리는 이야기와 온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우리네 한옥의 흙이나 자연으로 뒤덮인 마당이 아닌, 검은 화강석으로 채워진 마당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바닥의 단단한 촉감과 무정함 같은 것에 반감이 들었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건축과 도시의 중첩된 풍경이 그 생각을 가볍게 바꾸어 놓았다. 그 장소는 끝없는 자연이 펼쳐진 숲이 아닌 도시의 중심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무정한 바닥은 한없이 차가운 도시와 따뜻해지려 하는 건축의 중간에서 그들을 중재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전혀 무정하지 않았다.

 

처마 - 비가 올 때면 한옥에서는 처마를 따라 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대사관에서도 그러한 풍경이 펼쳐질까 생각했었지만 아마 대부분의 빗물은 그 모습을 숨긴 채로 선홈통을 따라 흘러내려갈 것이다. 다만 처마를 따라 내려오는 레인 체인으로도 일정량의 빗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한옥의 처마가 빗물을 무수히 떨어트릴 때, 대사관의 처마는 그것을 다소 정제시켜서 떨어뜨릴 것이다(언젠가 그 모습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채나눔 -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마당을 따라 죽 늘어선 매스가 너무도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한옥은 대부분 채들이 나누어져 있다. 나누어진 채의 사이로 바람이 들고 볕이 들고 풍경이 든다. 그곳에 길이 생기고 마루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지나가고 사람이 모인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들, 한옥의 채나눔이 착실히 수행하는 장소의 다양한 변주이다. 하지만 스위스 대사관은 단단하게 닫혀있다. 집의 중심에 마당이 있고 그것을 처마가 둘러싸고 그 너머에 비움과 채움이 서로 양보하며 존재하는 것이 우리네 것이라면 대사관은 그것의 절반 정도만 수용한 듯하다. 매스의 낮음과 높음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풍경의 다양성을 만들고 있었지만 매스 자체에 있어서 비움이 부족해 보였다. 작은 비움, 그것이 새로운 풍경의 가능성으로도, 사람들이 모이고 헤어지는 장소로서의 가능성으로도, 건조한 마당과는 대비되는 풍요로운 자연의 가능성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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