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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Jan 23. 2023

직업으로서의 건축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는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와 건축가로 설정해 놓은 상상 속의 인물을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었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이상하리만큼 건축가라는 직업과 닮아있다. 왜일까,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이라는 세계에 푹 잠겨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얼마 전에 리모델링을 마무리한 주택에서 건축주와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하며 미소 짓는 나의 모습과 아주 조금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졌다.


[낙차]

소설가라는 직업은 계속해서 자신을 갈고닦으며 지속해 가는 직업이 아닌가 싶다. 목적지까지 가는 빠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둘러가기도 하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과 쓰여진 스토리 간의 낙차의 폭이 큰, 그런 직업 말이다. 건축가도 마찬가지이다. 물속의 물고기처럼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어야만 살 수 있는, 그리고 생각과 그려진 것에 대한 낙차의 폭이 큰 직업이다. 낙차의 폭이 큰 만큼, 시적이고 감동적인 스토리와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러한 직업 말이다.


[형태 없는 보상]

'상'이라는 유형의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니 소설과 건축의 또 다른 공통점이 보인다. 건축도 물론 여러 가지 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상을 받았는지, 혹은 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여부보다는 그 건축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형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책과 이야기를 건네주는 것처럼 건축가는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꼭 맞는 공간을 건네준다. 독자들이 책을 읽어가며 몽글몽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처럼 건축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삶이 펼쳐진다.  


[데칼코마니, 무엇을 쓰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

자, 뭘 써야 할까.

소설가가 되려면 일단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소설이라는 것이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를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해야 하고 뛰어난 문장을 만나고 그렇지 못한 문장도 만나야 한다.

그다음에는 사물이나 사상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어야 한다.

’아, 이건 이렇다 ‘라는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재빠른 결론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축적’해나가야 한다.

다소 맥락 없는 기억일지라도 그것을 분석하거나 논리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맥락 없는 기억에 의해 조립되는 기이한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결국 소설가는 여러 가지 기억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쌓여있는 큰 서랍장을 가지고 있다. 거기서 재료들을 꺼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 뭘 그려야 할까.

건축가가 되려면 일단 공간을 많이 보아야 한다. 건축이라는 것이 어떤 구성으로 되어있는지를 가장 기본적인 단계부터 이해해야 하고 좋은 공간을 만나고 그렇지 못한 공간도 만나봐야 한다.

그다음 할 일은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공간을 만나는 것이 소설가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면 소설가가 글감을 찾아 떠나는 것은 건축가가 건축을 이루는 요소를 찾아 떠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잠깐 멈춰 서서 흔히들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다시 곱씹어볼 수 있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원래 이 공간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어, 제일 효율적이고 그래서 오래 지속되어 왔어’라는 고리타분한 말에 ‘아니, 잠깐만, 어쩌면 이건 너무나도 당연하게 답습되어 온 생각일 수도 있어’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건축주의 생각이나 주변의 맥락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을 충분히 저장해 둘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만 한다.

(맥락 없는 기억과 그것들의 조합으로 탄생하는 기이한 상상력은 건축과 공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일까,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는 건축에 맥락 없는 기억과 그것에서 기인한 상상력은 어쩌면 소설처럼 허구적인 상상에서 머무를 수가 있다. 건축가는 기억에서 상상력으로 가는 길목을 조심히 걸어갈 필요가 있다. 거침없이 그 사이를 헤쳐나가는 소설가와는 달리 다소 천천히 걸어가며 이런저런 것들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건축가는 소설가와는 달리 좀 더 구체적이고 세세한 디테일을 가지는 재료(기억)를 담아둘 수 있는 서랍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만 소설가의 그것이 약간은 말랑말랑하고 투명한 느낌이라면 건축가의 그것은 쇳소리가 나고 단단한 느낌이다.  


[그것을 사랑하는 것]

책을 읽다 보니 무라카미하루키라는 사람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점차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설 이외의 모든 것들을 한편으로 제쳐두고 해외든, 지금 그가 있는 곳이든 간에 그것에 행복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과연 나의 직업이 그러한 것일까.

 

'나를 온전히 건축 앞에 데려다 두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부담감이나 두려움, 망설임과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하게 몰입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건축을 진정 좋아하게 된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삶이 건축이라는 형태에 잘 끼워 맞춰진 그런 진정한 건축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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