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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Feb 19. 2023

닻과 오름, 그리고 텅 빈 그릇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스위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다. 여러 소설책이 늘어선 책장 앞에서 다소 긴 제목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가 '순례'를 떠났다는데, 한순간 이 책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색채 없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동질감에 끌렸던 것이 아닐까.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절반을,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머지 절반을 모두 읽어내었다. 결과적으로는, 올해의 첫 번째 책, 그리고 여행의 시작과 끝을 많은 의문과 해답으로 채워 넣은 그 검은 책은 성공적이었다.


[고르다]


이야기 속, 다자키쓰쿠루의 삶이 불편한 듯 익숙하다. 색채 없음에 무덤덤한 듯, 슬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어떤 동질감을 느껴졌고 색채 없음에 무덤덤한 듯, 그것을 달가워하는 나의 모습에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나의 이름에는 '고르다'라는 의미의 '균'자가 들어간다(어렸을 때에는 저 글자 하나가 참 많은 별명을 만들어냈다). 어렸을 때는 뭐든 부족함이 없었다. 처음 배우는 것들도 곧 잘하게 되었고 좋은 친구들도 항상 옆에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하나에 두각을 보이는, 어떤 색채가 비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농구를 잘해서 항상 환호와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던 친구, 말솜씨가 아주 좋아서 그 주변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친구, 그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묵묵히 읽어 내려가던 친구에게는 각각 다른 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서는 그 어떠한 색채도 찾지 못했다. 마치 그로 인해 항상 고민하던, 그리고 천천히 죽어가던 다자키 쓰쿠루의 모습처럼 말이다.


개성 있고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한 사람들은 당연 주위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어느 하나의 방면에서 아주 가파른 그래프를 가진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나의 그래프는 그렇지 않았다. 평평하게, 아주 고르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나만의 색채를 가지기 위해 삶의 그래프를 가파르게 깎아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부분을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확신도 없이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닻과 오름, 그리고 텅 빈 그릇]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책의 중심에서 오랜만에 만난 다자키쓰쿠루와 아오의 대화가 나타났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넌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었어. 넌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굳게 딛고 서서 우리 그룹에게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배의 닻처럼. 네가 떠나면서 우리는 새삼 그걸 실감했어. 우리한테는 역시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다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떠난 이후로 우리는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어."  - p.203


배의 닻처럼. 그렇다.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던 내가 반대로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색채가 없는 것들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따뜻함과 배려,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차가운 바다의 깊숙한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잠겨있는 닻과 제주에 펼쳐진 수많은 오름들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보인다.  텅 빈 그릇은 그것이 뜨겁거나 차가워도 온전히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화려하게 빛나는 바다 위의 배와 하늘을 찌르듯이 치솟은 높은 산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겠지만, 누군가는 텅 빈 그릇을 보고 그것의 개성 없음과 공허함에 탄식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아래에 잠겨있는 닻의 인력에 끌려가는 듯하고 낮은 언덕 같기도 한 오름이 모든 감각을 아주 조금 요동치게 하는 듯하다.


나는 나로 인해 평화로운, 그리고 균형 잡힌 그러한 상태가 좋다. 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항상 주목받는, 그런 상태가 아니어도 괜찮다. 남들이 보지 않는 깊은 곳에 닻을 내려두고 그들의 이야기가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그날의 관계가 기분 좋은 풍경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안도감과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평평한, 그리고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삶의 그래프를 그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파장을 흘려보내고 있는 아주 균질한 시간의 틈 속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써보고자 한다. 그로 인해 평범했던, 평평했던 그래프가 조금씩 출렁이기 시작하고 옅은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삶을 상상해 본다.


닻은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망망대해에서 배와 이야기와 밤하늘을 붙잡아두고

오름은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의 섬칫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텅 빈 그릇은 비어있음으로 인해 그것이 무엇이든지 담아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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