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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의 밤 May 26. 2021

가슴 뛰는 일을 하라고 하길래

진짜 가슴이 뛰는 순간


이른바 한비야 세대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말을 성경 말씀처럼 가지고 살았다. 한비야뿐 아니라 ‘7막 7장’을 쓴 홍정욱 대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쓴 탤런트 김혜자 씨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선하고 착한 일을 하면서 가슴 뛰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나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능을 본 뒤 과감하게 사회복지학과를 진학했다. 그리고 졸업 후엔 순조롭게 국제구호단체(NGO)에 입사를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비록 소속 팀은 마케팅 관련 부서였지만,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해외 지부로 발령이 나거나 해외 봉사 인력으로 뽑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 주어진 일은 가슴 뛰는 일과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아프리카 후원 아동의 사진과 편지를 보며, 언젠가 현장에 나가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워낙 보수적인 단체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되고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1년이란 시간을 겨우겨우 버텼다. 그리고 입사 1주년이 되는 날.


퇴사를 했다.  

사실 퇴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아 이 일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니야.’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과감하게 퇴사를 하고 두 번째로 입사한 곳은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유명한 매거진 회사였다. 첫 번째 직장과 다르게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세련된 사람들 덕분에 얼마간은 정말 즐거웠다. 성장하는 회사라 그런지 모두가 자기의 일에 열정적이었고 성장하는 속도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나만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무엇보다 8개월 남짓 회사를 다니며 정말 외로웠다. 성장하는 회사답게 조직구조가 매달 바뀌고, 팀이 개편되고, 정을 준 동료들을 줄줄이 이직을 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데도 일을 향해서도, 사람들을 향해서도 내 심장만은 뛰지 않았다. '아 이것도 아니구나' 싶어서 또 퇴사를 했다.


지금이야 퇴사에 대한 책들이 흔하고, ‘퇴사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들이 심심찮게 보이지만 그 당시 내게 두 번의 퇴사는 곧 두 번의 실패였고, “이제 다시 사랑 안 해.” 대신 “이제 다시 퇴사 안 해...”를 조용히 부르곤 했다.


그렇게 세 번째 회사를 들어갔다. 사실 세 번째 회사는 이력서를 잘못 넣는 바람에 얼떨결에 면접까지 보게 되었는데, 면접에서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는 바람에 결국 최종 합격을 했고, 정신 차려보니 첫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이어리와 가방, 소품 들을 만드는 작은 디자인 회사였는데, 내가 속한 팀은 현장 관리를 하는 부서였다. ‘나 사회복지학과 나왔는데 이런 거 해도 되나?’ 싶은 고민이 불쑥 들 무렵, 거기서 내 심장을 뛰게 한 존재, ‘티미’를 만났다. 티미는 내가 속한 팀 직속 팀장님이는데 그녀는 15년을 가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했지? 이 사람은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군. 여기가 내가 누울 자리다. 여기로 정했다.’


물론 이전에도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 직장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티미만큼 즐겁고, 열정적인 사람은 없었고 무엇보다 성향적으로 나와 너무 잘 맞았다. 좋아하는 관심사도, 배가 고픈 타이밍도,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도 같았던 우리는 사무실에서도 외근 현장에서도 늘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미가 정말 좋았던 이유는 그가 정말 ‘어른 같아서’였다. 그녀는 정말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서도 ‘민주임이 그건 더 꼼꼼하게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그걸 확인하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곤 했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감사와 사과를 많이 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나의 경험상 고맙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찌질 해 보이고, 너무 미안하단 소리를 많이 하면 쉬워 보일 것 같은데, 티미는 지질하기는커녕, 쉬워 보이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자비롭고 성숙해 보였다.


티미가 진짜 어른이라서, 닮고 싶은 사람이라서, 무려 4년이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고작 4년에 ‘무려’라는 수식을 붙인 것은, 그곳에서의 일도 역시나 가슴 뛰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미와 함께 일을 하면서 비로소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게는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같이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조건이었다. (물론 진짜 ‘사람만’ 좋은 회사 말고...)



지금은 네 번째 회사를 다닌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서의 경험과 경력들을 기가 막히게 이리저리 활용할 수 있는, 성장하는 회사다.


스타트업답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벤트들이 자주 일어난다. 처음 입사하고 가장 좋았던 복지 중에 하나는 ‘반려견 동반 출근’ 제도였는데 덕분에 나도 몇 번 강아지를 데리고 출근을 한 적이 있다. 다행히 우리 강아지는 내가 일하는 동안 얌전하게 다리 밑에서 잠을 자거나 내 옆에 꼭 붙어 있어서 크게 사고를 친 일이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손길을 받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나도, 우리 강아지도 은은한 관종이라 가끔 1층부터 4층까지 돌아다니며 간식을 얻어먹곤 하는데 어느 날 평소 인사만 하고 지내던 디자이너의 자리에 가자, 그는 수줍은 얼굴로


“깜순이가 온다고 해서 바닥을 한 번 청소했어요.
혹시라도 초콜릿 같은 것이 떨어져 있을까 봐...”

라고 말했다. 그땐 그냥 웃으며 넘겼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일 하는 우리 회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가 나보다 일은 조금 덜 하고, 돈을 조금 더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 나는 이런 근사한 사람과 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사심 아님.)


그날 이후로 회사의 대표도 아닌 내가 ‘가슴 뛰는 일, 가슴 뛰는 회사’를 들겠다는 건방지고 간지럽고 야무진 꿈을 꾼다.

무엇보다 내가 잘됐으면 좋겠고 내 동료가 잘됐으면 좋겠고, 우리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사는 동안 계속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가슴 뛰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내가 배운 방법대로, 내가 받은 배려대로 가슴 뛰는 동료가 된다면, 누군가의 하루도 가슴 뛰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우리를 함께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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