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원정대

상상력은 얼마인가요?

by 밤돌

아들은 놀이터가 지겨우면 슬쩍 말한다.


"다이소 갈래."

"왜?"

"살게 있어."

"뭔데?"


그리고 조금 뒤,


"있어~!"


나도 그랬다. 살 것도 없으면서 자주 들렀다. 4살 꼬마의 마음도 비슷한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 백화점도 아니고 다이소 쇼핑 정도는 쿨하게 데려간다.


아들은 다이소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코를 박는다. 매번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묻는다. 거절당하면 실망한 표정으로 몇 초 있다가 다른 곳으로 총총 걸어간다.


첫 번째는 역시나 장난감 코너. 벌써 수십 번 다녀갔지만 처음 온 것처럼 둘러본다. 다행히도 다이소 장난감 코너는 빠르게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아들은 발길을 돌린다.


다음은 반려동물 코너와 공구 코너. 집에는 반려동물이 없고 공구도 딱히 필요하지 않지만 아들 눈에는 신세계다. 눈이 커져서는 이것저것 만져본다. 쓰임새도 모르면서 말도 안 되는 사용법을 시연한다. 그리고 혼자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남자아이답게 길고 튼튼해 보이는 물건에 관심이 많다. 대부분 모험을 떠나거나 전투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아들의 모험과 전투에서, 나는 늘 악당이다. 그런 나를 눈앞에 두고 무기를 고르는 모습은 참 도발적이다. 아니, 어쩌면 신사답게 정정당당한 결투를 예고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들이 고른 무기가 곧 내게 향할 걸 알면서도 가장 멋진 무기를 골라준다.


아이가 고른 물건 하나쯤은 기꺼이 사준다. 다이소에서는 고가지만, 장난감 가게 기준으론 꽤 저렴하니까. 아들은 마치 왕이라도 된 듯, 느긋하게 쇼핑을 즐긴다. 또 옆에서 시중을 들며 짐을 들어주고, 계산까지 해주는 아빠가 있으니 쓴 돈에 비해 아주 행복하게 쇼핑을 하는 셈이다.


평범한 물건도 아들이 선택하면 특별해진다. 유리구슬은 차가운 화분 대신 보물로 취급받고, 따뜻한 상자에 모셔진다. 신발 정리 집게는 발냄새 대신 적을 제압하는 중요한 무기로 취급받는다. 또 며칠 전에 산 경광봉은 파이어소드가 되어 아들이 외출할 때마다 소중히 들고 다니고, 밤에는 침대에서 반짝거리며 어둠을 밝혀주는 전등 역할도 하고 있다.


어쩌면 다이소는 아이 세대의 시골 할머니댁이자, 아파트촌의 야산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할머니댁의 너른 마당도 마음껏 뛰놀던 동네 야산도 찾기 어려운 시대 아닌가. 서랍 속 보자기 하나로 망토를 두르고, 야산에서 주운 대나무 막대를 칼 삼아 허리춤에 꽂고 다니며 키워 나갔던 상상의 세계를, 아들은 다이소를 통해 펼쳐나가고 있다. 어쩌면 다이소가, 어린 모험가들을 위한 가장 가까운 보물상점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내가 살아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라는 아들이 뭔가를 놓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 부모세대가 겪지 못한 컴퓨터 게임을 자녀들에게 금지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처럼 내가 겪지 못했다고 금지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아이와 함께 웃고 때론 후회하며, 아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 나가려 한다.


그러니까 다이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어른의 물건을 만지작 거리며 까불 거리는 어린이 용사와 그 뒤에서 더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를 지켜보는 수염 거뭇한 부하를 발견한다면 양해 바랍니다. 두 남자는 현실과 상상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진지하게 임무 수행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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