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즈카페 소믈리에였다

커피는 별로지만 오늘도 좋았다.

by 밤돌

아들과 나는 키즈카페 VIP다. 아무런 계획 없는데 놀아야 할 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놀 수 있는 곳을 찾다보면 결국 키즈카페가 만만하다. 이젠 여러 키즈카페를 지도도 없이 척척 찾아갈 수 있다.


포인트제도를 생각하면 한 곳만 꾸준히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아빠의 입장에서 한 곳만 다니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상점이 생겨 자주 가게 되었을 때, 대놓고 아는 척을 하거나 말을 걸면 불편함을 느끼는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또 한 곳만 다니면 지겹다. 내가 노는 것도 아니지만 매번 같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재생속도를 느리게 한 것처럼 하품이 난다. 다음 곡을 외워버린 플레이리스트, 매번 똑같이 켜지지 않는 장난감을 보면, 더 싫증이 난다.


그래서 여러 곳을 알아두고, 그날그날 내 기분이나 재정 상태, 차가 막히는 시간 등을 고려해 장소를 바꿨다. 때에 따라서는 조금 멀리 있는 키즈 카페를 가고, 신상 키즈카페가 근처에 생기면 꼭 가본다. 이제 키즈카페 비평에 있어서는 내가 백종원이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오늘 아들에게 가장 적합한 키즈카페를 추천한다. 그러면 아들은 좋다고 했고 우리는 비교적 잘 맞는 콤비 같았다. 그렇게 나는 키즈카페 소믈리에로서 제법 인정받았는데, 어느 순간 고객님의 입맛이 변했다. 말도 조리 있게 하고, 키즈카페 이름도 기억하더니, 내 추천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니, 0000 갈꺼야."

"아니, ㅁㅁㅁ 가고 싶은데."


아들의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키즈카페 소믈리에 자격은 기꺼이 내려놓았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이 녀석이 키즈카페를 결정하는 기준은 뭘까. 4살 밖에 안됐지만 나름 기준이나 취향이 있지 않을까. 몇 번을 지켜보니 패턴이 보였다. 결국 기준은 하나, 지 맘대로였다.


우연히 유치원 친구를 두 번이나 만나서, 한동안 그 키즈카페를 반복해서 간 적이 있다. 또 키즈카페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여러 가지 소리로 바꿔보며 재밌어 하고 그 키즈카페만 계속해서 간 적도 있다. 그리고 몇 달을 안 가다가 불쑥 말해서 그 곳을 가는 적도 있었다.


아무리 분석해봐도 지멋대로였다. 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있긴하다. '오늘 내가 재밌을 곳'이 아들의 기준이다. 그게 맞다. 어린이에게는 '오늘'의 행복도 중요하다. 가끔은 아빠가 추천해주는 곳을 가주면 좋을 것 같다. 아니, 거기 커피가 맛없다니까. 하지만, 고객님이 행복하니까 그걸로 됐다. 오늘도 아들은 뛰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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