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혼 Oct 24. 2021

응답하라. 누군가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육아 선배들이 이야기 해준 조언 중에 중고 육아물품을 잘 사용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새로 사는 것이나 대여를 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다고했다. 생각해보니 그러했고 실제로도 거래가 활발했다. 하지만 막상 거래를 하려니 중고거래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만 있어서 거래를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는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시청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빈도가 확 늘었다. 알고 보니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중고나라 네이버 카페를 앞설 정도로 당근마켓이 화제라는 것은 들었지만 아내가 당근마켓 죽순이가 될 줄은 몰랐다.


 덩달아 나도 거래에 휘말리게 되면서 유통업자로 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거나 운전해서 가야 하는 경우 등에는 내가 대신 거래를 했다. 거래를 여러 번 하게 되면서 중고 거래에 대한 인식이 변하긴 했지만 좀처럼 중고거래에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다.


 마침, 어디에든 나타나기 마련인 나쁜 사람들이 당근 마켓에도 출몰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사기꾼들과 더불어 되팔렘들, 무료 나눔에 갑질 하는 놈들, 스토킹 하는 놈들 등등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아기 용품을 거래할 때는 그런 사람들과 만날 확률이 낮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계를 풀 수 없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서서히 우리 삶에 녹아들어 갔다. 새것을 파는 사람이 꽤 많았고 직거래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익명의 사기꾼을 만날 위험이 적고 구매 목록이나 평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신뢰가 보장되는 거래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당근마켓에서 구할 때가 있어서 초보 부모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곳이 되었다. 그동안 만났던 마스크를 쓴 익명의 사람들의 정체를 영영 알 수 없겠지만, 그분들의 협조 덕에 아들은 별 탈 없이 자랐다.


 아들이 생후 100일쯤 되자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물건이 생겨났다. 물건을 알뜰하게 구매하여 쓴다고 생각했지만 쓰지도 않은 멀쩡한 물건들이 있었다. 또 시기를 놓친 것들, 시기를 지난 것들이 꽤 있어서 우리는 드디어 구매자에서 판매자로 역할을 바꿔볼 기회가 생겼다.


 시간의 여유가 부족하기도 하고 주변에 줄 사람도 없어서, 어차피 쓰레기로 버릴 바에 누군가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 제품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중고물품은 무료 나눔이나 일괄구매로 아주 저렴하게 넘겼다. 그래서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구매자일 때는 항상 같은 태도를 취해서 잘 몰랐는데 판매자가 되고 나니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중고거래를 하던 나처럼 아주 조심스러운 사람들도 있었고 10초도 안 걸리는 사이에 거래가 완료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거래를 하다 보니 구옥들로 가득한 옛 거리에서 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 사는 요즘에 느낄 수 없는 훈훈한 사람 냄새를 오래간만에 맡게 되었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역시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다. 그들은 채팅도 부자연스럽고 신속, 간결한 거래에 익숙하지 못해서 답답하게 느껴진 적도 있지만 거래를 하면서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이웃주민에게 사소한 인사치레를 하거나 괜히 이유 없이 아이들을 시켜 음식을 건네던 어릴 적을 떠올리게 했다. 무료 나눔을 하거나 시세보다 낮게 물건을 거래하는 까닭인지 뭔가 하나씩 더 들고 오셨다. 손수 짠 수세미, 직접 말린 꽃차, 직접 담근 매실액 등을 주셨다. 헤어진 뒤에 인사말은 기본이고 거래가 종료되고 난 뒤에도 직접 찍은 풍경사진을 계속 보내는 분도 계셨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마음이 따뜻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겨운 감정이 솟아나게 한 불씨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였다. 저렴한 거래에 감사하는 마음, 그냥 받을 수는 없어서 뭐 하나라도 챙겨주는 마음, 며느리 혹은 딸을 생각하여서 온라인 거래도 서툴고 길을 헤매게 되지만 끝내 거래를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 마음도 같이 따스해졌다.


 이렇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을 겪을 때마다 사라진 옛것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예전의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친인척이 어울려 살던 담장 낮은 옛 마을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옆집 삼촌, 먼 친척뻘 아주머니 등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하다못해 입으로 아이를 키워주던 그 시절에 아들을 키웠다면 인성 교육은 걱정 없었을 것 같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옛 마을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엔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각종 학원, 베이비시터, 등등. 그리고 커뮤니티도 필수다. 맘 카페, 학부모 모임, 조리원 동기모임 등등. 그리고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당근마켓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의 굴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