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편안함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행복

by 밤돌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좋아한다. 영아 때는 세상천지 구별도 못 하면서 부모의 품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좀 더 크면 의도적으로 부모의 품을 찾아 파고든다. 등센서라는 말도 있어서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자다가도 울면서 깬다는 아이들이 있고, 쌀 포대만큼 무거워져도 부모의 품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아이들이다.


안아주는 방식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둘 다 안을 수 있으면 안자는 주의다. 손목이 꽃게의 다리처럼 똑 떨어져 나가더라도 안아주는 것이 우선이다. 아기띠도 여러 개 사봤지만 다리를 차고 감옥에 갇힌 듯이 울어버리는 탓에 미천한 두 팔로 받들어 모신다.


아들을 안고 있다가, 내려놓게 되면 영화에서 고문을 당하는 주인공처럼 비명을 지른다. 기겁해서 아들을 안아 올리면 아들은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나에게 맡겨버린다. 엄마 뱃속에서 지냈던 것처럼 품 속에서 살아간다. 꿀떡꿀떡 모유를 삼키고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는 등 정말 뱃속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는 스르륵 잠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을 안는 것에 익숙해져 갔지만 늘어나는 아들의 체중이 늘고 안아주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우리 부부의 부담이 커져갔다. 또, 점점 우렁차게 커지는 울음소리, 하늘로 솟아오를 것처럼 힘찬 발길질에 우리는 지쳐갔다.


더 이상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들은 달콤한 미끼를 던졌다. 눈도 못 맞추던 녀석은 어느 순간 가까이 가면 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생리적 욕구가 모두 충족되면 실실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부모의 표정을 보고 따라 웃거나 허공을 보면서 웃는 모습도 보였다. 아들의 그런 변화에 너덜너덜해진 손목은 진통제를 맞은 듯 감각이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 열심히 안아 올리게 되었다.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태어났을 무렵보다 많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못하던 녀석이 안는 자세를 가리고, 내려주길 원하고, 고개를 휙휙 돌리며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한다. 여전히 부모의 품에 종속되어 있긴 하지만 점차 부모의 품을 안전 기지로 삼아 조금씩 멀리 탐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몇 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한 혜성처럼 품에 한 번 안아보기도 힘든 어른이 되겠지.


아들이 빠르게, 천천히, 자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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