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저씨의 행복 방정식
"다른 사람들은 목욕탕 데려 가려고 아들 낳는다는데 당신은 한 번을 안가네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버지나 나나 별 생각이 없었다. 둘 다 목욕탕을 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엔 꼬박꼬박 목욕탕을 다녔던 것 같다. 물론 아버지는 아니었고 외가쪽 식구들을 따라갔었다. 그것도 어느 순간 가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목욕탕을 다시 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주도했다. 아들이었다. 키즈카페나 놀이터가 지겨워서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노천탕이 있는 사우나가 있어서 재미 삼아 한 번 데려 갔더니 월요일부터 가자고 조른다.
월요일부터 목욕탕은 부담스럽다. 우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목욕탕을 즐기려는 마음이 들기 위해선 적어도 목요일은 되어야 한다. 월요일부터 쌓인 스트레스가 고점을 찍는 목요일과 금요일 사이가 목욕탕을 가기에 딱 좋다.
주말의 목욕탕도 북적거리고 활기찬 매력이 있지만, 목요일에 가야하는 이유가 있다. (평일은 비슷할 것 같다.) 목요일 늦은 오후에 목욕탕에 들어서면 사람이 거의 없다. 제법 큰 사우나인데 사람이 10명도 안 된다. 고요한 노천탕과 통창으로 햇빛이 밝게 들어오는 열탕을 보면 안 들어가고 못 베긴다.
아들도 사람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다~." 하면서 온탕에 들어간다. 몸을 데우고나서는 잠수도 하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잘도 논다. 사람이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아빠가 싫은 소리할 일도 별로 없으니 더 신나나 보다. 장난감 하나 없어도 2시간 넘게 논다.
나도 눈으로 계속 아들을 따라가며 열탕과 냉탕을 오간다. 예전에는 때를 불리기 위해 온탕에 들어가는 행위가 싫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몸이 시뻘건 아저씨들이 즐겼던 의식을 나도 말없이 반복한다. 뜨거움과 차가움에 단순히 집중하다보면 몸 뿐만 아니라 머리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아저씨다.)
아들과 함께 열탕과 냉탕을 오가다보면, 안아달라고 하는 순간이 있다. 힘이 없단다. 노곤해졌으니 집에 갈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길, 아들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살며시 침대에 눕혀놓고,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차갑게 식힌 맥주를 곁들인다. 나른해진 몸을 적시는 맥주 한 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완벽한 아저씨다.)
어제 퇴근 후 유치원에 아들을 데리러 갔더니 인사말이 남달랐다. 아빠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들이 말했다.
"목욕탕 갈래."
"목요일에 가자."
"응?"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안돼. 목욕하는 날이라서 목요일이야. 세 번 더 자야해. 월요일 다음 화요일, 다음 수요일 다음 목요일!"
"글자가 같네! 목욕탕! 목요일!"
"그래, 목요일에 가자~?"
"그래! 좋아!"
말장난에 수긍하는 아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중한 목요일의 안식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다. 누가 알았을까, 아들 덕분에 목요일 오후의 고요한 목욕과 시원한 맥주라는 행복 방정식을 알아버렸다. 제법 괜찮은 '아저씨'의 시간을 알게 되었다. 고맙다, 아들.